[역경의 열매] 이광희 (15) 어머니 “선한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 당부

패션은 아름다움 추구하고 나누는 것… 자선쇼 열어 소외된 이웃에 나눔 실천

이광희 디자이너가 2009년 11월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희망의 망고나무 심기 패션쇼’가 끝난 뒤 모델들과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 모델의 옷 가슴 부분에 어머니 사진이 있다. 국민일보DB

생전의 어머니가 아흔이 되실 무렵의 일이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세요.”

어머니의 답은 의외였다. “너는 지금 어느 선(線)에 서 있느냐”를 자문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나는 지금 어느 선에 속해 있는지 생각하고 있다”고 첨언하셨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경계 가운데 지금 내가 어느 경계, 어느 선에 서 있는지를 어머니는 묻고 계셨다. 그 경계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답은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말씀해 오셨다.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내일로 미루지 말아라. 내일로 미루면 악한 일이 된다”고 말이다.

디자이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선쇼였다. 1992년 서울 힐튼호텔에서 무의탁 노인을 위한 기금 마련 패션쇼를 연 뒤 다양한 주제로 자선쇼를 열었다.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장애인 치료센터와 발달장애인 재활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기금을 모았다. 신장병 어린이와 루푸스 환자, 아버지를 기리는 이준묵목사재단, 한국유방재단을 돕기 위한 패션쇼도 열었다.

단순히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자선쇼를 열었던 건 아니었다. 소외된 이웃을 도울 방법을 찾던 중,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어디에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실천 방법을 몰라 나눔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패션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 고객과 주변 지인들 모두가 동참할 방법을 고민했고 그렇게 찾은 답이 자선쇼였다.

디자이너의 삶을 두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하던 것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선쇼는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다. 2000년부터는 연말마다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전시회도 열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이건 아니건 누구나 다 좋아하는 날이다. 이런 날 예수님 오심을 알리고 축제를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겠다 싶었다. 자선쇼 마스코트인 ‘수호천사 인형’은 인기리에 팔렸고 그 수익금은 해마다 결손가정 노인 100가구 이상을 돕는 데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선쇼와 전시회 덕에 희망고 프로젝트를 쉽게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수호천사가 망고나무 심어주기로 바뀐 정도니 말이다.

사람들은 나눔이, 주는 게 아니라 얻는 것이라 한다. 시간이 흘러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풍족하게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풍성한 존재가 돼 있기를 소망해 본다.

‘디자이너의 길이 내 길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의 답도 찾았다. 2009년 희망고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담당 국장과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유명 디자이너가 생뚱맞게 아프리카를 돕는 NGO를 만들겠다고 한 이유가 궁금했던 국장은 나와 한참 대화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이걸 하려고 패션을 했나 봐요.” 그러고는 사단법인을 승인하는 서류에 결재를 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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