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첫 연습경기가 지난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유행 억제를 위해 이날부터 시작한 연습경기를 무관중 생중계로 진행하고 있다. TV·인터넷·모바일 플랫폼으로 생중계된 이날 경기는 지난해 정규리그보다 많은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 5월 5일 개막하는 정규리그 역시 당분간 무관중 생중계로 진행될 전망이다. 권현구 기자

“야구장에 들어가지 못해도 좋습니다. 야구를 시작한 것이 중요하죠.”

30대 남성 박진우(가명)씨는 프로야구 연습경기가 시작된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 KT 위즈 파크 주변 북측 출입로 주변을 서성였다. 박씨는 수원에서 나고 자란 KT 위즈의 열혈팬이다. 그는 “무관중 경기인 줄 알면서도 공을 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경기장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 화면에 실행한 모바일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밴드의 KT 팬 게시판을 가리키며 “여기가 내 관중석”이라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따라 지난달 28일로 예정했던 2020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개막일을 어린이날(5월 5일)로 연기했다. 그나마 개막을 기약할 수 없는 미국·일본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국내 야구팬의 갈증은 이미 정점에 올랐다. KBO는 연습경기부터 정규리그 초반까지 무관중 경기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신 TV·인터넷·모바일 같은 모든 플랫폼을 활용해 팬들에게 경기를 보여주기로 했고, 야구팬의 호응을 얻었다. 경기장 앞까지 찾아왔지만 결국 스마트폰을 손에 놓지 못하던 박씨는 그중 하나다.

박씨의 손은 게시판과 포털 사이트 모바일 중계방송 화면을 오가느라 분주했다. 그는 야구장 주변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해 게시판 회원들에게 공유할 목적으로 경기장에 달려왔다고 한다. 회원 수 30명을 웃도는 작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만, 사진·영상에 따라오는 호응 댓글 한두 마디가 박씨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는 “관중석에서 함께 내지르는 함성 못지않은 기쁨이 회원끼리 나누는 대화에도 있다”며 “요즘은 ‘직관’(경기장 방문 관람)보다 ‘티관’(텔레비전 시청)하는 팬이 더 많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해외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다방면으로 즐기는 국내 스포츠팬에게 인터넷·모바일 중계방송 시청과 게시판 토론은 이미 익숙한 활동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무관중 경기가 세계 각국에서 계속되면 스포츠팬들의 소비 방식은 급격하게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팬의 개념이 ‘관객’에서 ‘시청자’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프로야구 연습경기 첫날의 인터넷·모바일 중계방송 시청자 수는 팬의 새로운 개념을 세우는 과정에서 지표로 삼을 만한 기록을 냈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오후 2시에 시작된 KT와 한화 이글스의 연습경기는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돼 오후 4시40분쯤 끝났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이뤄진 이 경기 중계방송은 약 2시간40분의 짧은 시간 동안 38만4693명의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 네이버에서 경기 종료 이후 별도의 영상으로 제공된 ‘다시보기’나 ‘하이라이트’ 조회 수는 시청자 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KT 위즈 파크의 수용 인원 2만2000명. 인터넷·모바일 실시간 중계방송 시청자 수는 경기장 수용 인원의 17배를 웃돈다.

KBO가 22일 네이버에서만 집계한 연습경기 첫날 5경기 중계방송의 누적 시청자 수 총합은 288만4792명이다. 평균 57만6958명을 기록했다. KT와 한화의 대결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잠실 더비’는 71만9548명,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영호남 더비’는 68만1915명의 누적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오후 6시부터 야간경기로 펼쳐진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의 ‘낙동강 더비’ 시청자 수는 5경기 중 가장 많은 76만2284명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가장 적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키움 히어로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만 해도 33만6352명을 불러 모았다.

KBO 관계자는 “네이버에서 서비스된 2019시즌 정규리그 중계방송 누적 시청자 수 평균이 약 21만7000명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연습경기 첫날 시청자 수가 지난해 정규리그보다 2.65배가량 많은 셈이다. 이는 야구팬들의 ‘열정’이나 일부 라이벌전으로 성사된 ‘흥행카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연습경기 무관중 생중계 첫날의 특수로 반짝인기를 누렸을 가능성은 있지만, 무관중 기조가 계속되는 한 인터넷·모바일 중계방송 시청자 수는 신기록 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스포츠채널 ESPN 카메라맨이 지난 18일(한국시간) 코네티컷주 브리스톨 스튜디오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여자프로농구 WNBA 신인 드래프트 진행 과정을 촬영하고 있다. ESPN은 이 방송을 가상현실로 생중계했다. 아래 사진은 자택에서 가족에게 둘러싸여 전체 1순위로 뉴욕 리버티의 지명을 받고 있는 오리건대 스타 사브리나 이오네스쿠(오른쪽 두 번째). AP뉴시스, WNBA 유튜브 캡처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지난 18일 무관중으로 진행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신인 드래프트를 가상현실 기법을 활용해 생중계했다. 이 방송은 38만7000명의 시청자를 불러 모아 전년 대비 123%나 증가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대희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선임연구원은 “경기장이 개방되면 팬들이 다시 관중석을 찾아가겠지만, 당분간 이뤄질 무관중 생중계에서 새로운 소비 방식이 팬들에게 소개될 것”이라며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스포츠 콘텐츠 생산 방식이 다변화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외면됐던 생활체육도 코로나19에서 유행하는 ‘집콕 운동’ 등으로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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