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방학은 엄마의 개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배달앱과 간편조리 음식으로도 삼시세끼를 제대로 준비하기가 벅찰 지경이다. 희한하게 집에만 있음에도 매일매일 나오는 빨랫감은 전혀 줄지 않고 도리어 좁은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생활하다보니 자질구레한 가족 간 신경전이 눈에 더 많이 띈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여러모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야기한 불확실성과 공포감 때문인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한국 사회에서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인간의 자유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국민의 암묵적 합의가 정립된 것 같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했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많은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은 한국에 비해 노동자 해고가 자유로운 편이라 이번 사태로 갑자기 실직 상태에 처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정부 정책에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개인들의 단체 행동이 전국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시민들의 저항이 아직은 시기상조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확률게임이 아닌 당장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격변기의 가장 큰 비극은 악인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소름끼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라고. 온라인 강의가 대세인 요즘, 내 아이들 학교 수업과 식사 챙기느라 힘들다고 이런저런 불평을 하면서 같은 하늘 아래 어른들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한끼의 급식으로 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이 많음을 애써 외면했다. 한없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구체적인 실천 목소리를 낼 시간이 아닐까.

황훈정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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