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박인근 형제복지원장이 원생들을 직접 때려 숨지게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원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목이나 삽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피해자 증언도 나왔다. 해당 피해자는 원장실 안에 피가 흥건했고 수갑과 고문 도구가 있었다는 진술도 했다.

이는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사건 32년 만에 피해자와 유가족 1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첫 공식조사에 포함됐다.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 용역에서 피해자 심층 면접을 총괄한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원장실에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원생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산시 조사팀이 새로 확보한 진술은 당시 전화 기술자였던 A씨(74)에게서 나왔다. A씨는 전화 가설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봇대 붕괴 사고 책임 문제를 해결하려 부산에 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1년6개월간 수용됐다고 한다. A씨는 전화 설치 업무 특성상 복지원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수용자 가운데 원장실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이번 조사에서 박 원장의 만행을 낱낱이 진술했다. 그는 “하루는 아침에 원장실에 가니 바닥에 피가 범벅돼 있었다. 조금 이따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피를 닦고 (다시) 불렀다. ‘어떤 애가 죽었구나’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도망치던 원생이 붙잡혀오자 원장이 두들겨 팼다. 그는 인정사정없이 삽으로 찍는 사람”이라며 “체력이 약한 사람은 죽어버린다”고 했다. 탈출하다 붙잡힌 원생에 대해 “고문해 살이 터지면 소금을 뿌려 발로 밟았다”고도 했다.

A씨는 “원장실은 사무실 옥상에 지어놨다. 그 안에 야구방망이처럼 깎은 참나무 몽둥이 열댓 개, 그리고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이 30개 걸려 있었다. 형사실의 취조실처럼 만들어놨다”고 기억했다. 그는 “40~50명이 (원장에게 맞아) 죽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소대장을 맡았던 B씨는 이번 조사에서 “내 손으로 매장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며 “지금도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고 술 마실 때도 생각난다”고 했다. 조사팀은 “구타 등으로 많은 사람이 살해에 가깝게 죽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받았다.

이번 조사는 광범위한 피해자 실태 파악이 이뤄진 첫 사례다. 국가인권위의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권고, 검찰 과거사위 진상규명 권고가 이어지면서 부산시는 지난해 7월 조례를 제정해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현재 대법원은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비상상고 사건 심리를 진행 중이다. 박 원장은 201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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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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