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서 의회는 국가체계 내에서 핵심적인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는 오래전부터 정치 불신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의 국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어떤 국가기관에 대해서보다 크다.

20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7년 이후 30년 만에 구성된 개헌특위를 공전(空轉)시킨 끝에 개헌을 무산시켰고, 이후 정치개혁특위에서 만들어낸 공직선거법 개정도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끝났다. 이에 대한 심층적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지만 이제는 21대 국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관심을 모아야 할 때다.

국회선진화법의 영향을 받지 않을 180석 거대 여당의 출현과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현안 해결 등 산적한 과제들은 21대 국회가 장밋빛 탄탄대로를 걷기는 어려울 것임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21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로 꼽아야 할 것은 20대 국회의 실패를 바로잡는 것이다. 특히 개헌과 공직선거법 재개정은 국가 기틀에 관한 문제로서 결코 소홀히 하거나 뒤로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2017년 국회 개헌특위가 무산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2017년 5월 치러진 대통령선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선거 전에는 개헌보다 선거운동 및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선거 후에는 정부 조직과 권력의 개편에 더 큰 관심을 가진 결과 운영 1년의 개헌특위가 성과 없이 끝나게 된 것이다.

당시 개헌특위가 구성된 직접적 계기는 최순실 사태의 후폭풍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 의해 파면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올바른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의 기본 틀이 바뀌었다면 승자독식 정치구조와 진영논리에 따른 극단적 대립의 정치문화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대통령선거로 인해 개헌을 무산시킨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찌 보면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도 승자독식에서 비롯된 정치문화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정치구조 속에서 여당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 찬성하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국민의 국회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처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여당인 공화당도 반대해서 저지하고 국익을 위해 필요한 정책에는 야당인 민주당도 찬성하는 것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가. 대통령과 정부가 실패해야만 야당에 정권을 잡을 기회가 주어지고, 승자독식으로 인해 선의의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가 국회 내 왜곡된 정치문화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개정된 공직선거법 또한 왜곡된 정치문화의 결과물이다. 명분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국민의 정당지지율과 각 정당 의석수의 불비례성을 개선하기 위한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한 것도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애초 의도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 명분을 소홀히 하고 이해득실만을 따지고 다투다가 정작 제도의 왜곡에 대해서는 눈감아버렸기 때문이다.

정개특위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서 제시한 것처럼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이 관철됐다면 최악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만 연동형으로 한다는 것은 기괴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추진하던 군소정당의 입장에선 최악의 제도이다.

개정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비례대표 의석수와 지역구 의석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20대 총선과 비교해 의석수가 같거나 적어질 수밖에 없는 제도인데, 이런 안에 동의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며, 군소정당의 몰락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이제 21대 국회는 산적한 과제들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헌과 공직선거법 재개정은 다른 어떤 과제보다 우선돼야 할 최우선적 과제라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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