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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파트너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2> 하나님 바로 알기

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 2018년 10월 경북 청송 경북북부 제3교도소에서 열린 법무부 교정기독선교연합회 순회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재소자가 출소 후 목회자가 돼 교정기독선교연합회 순회예배에서 교도소 강단에 선 것은 정 목사가 최초다.

작은 어항 속에 물고기 7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중에 다섯 마리는 착한 물고기이고 두 마리는 나쁜 물고기였다. 나쁜 물고기는 착한 물고기를 늘 괴롭혔다. 그래서 착한 물고기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것을 본 주인은 나쁜 물고기 두 마리를 다른 어항에 격리했다.

‘나쁜 물고기가 없어졌으니 착한 물고기가 건강하게 잘 살겠지.’ 어느 날 어항 속을 살펴본 주인은 깜짝 놀랐다. 착한 물고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물고기는 죽었다. 나쁜 물고기가 있을 때는 도망 다니느라 활동이 많아 건강했지만 더 이상 도망 다닐 필요 없이 주는 먹이만 먹은 착한 물고기는 살이 쪄서 비만으로 죽은 것이다.

우리 삶에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사람, 그것만 아니면’ 하고 생각하는 것들, 사실은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당신을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빚으시는 도구이고 파트너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천국 가치관으로 생각과 개념을 바꿔야 한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악역을 맡아 수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파트너(나쁜 물고기)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착한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중 어느 물고기를 사랑할까. 물론 하나님은 두 종류의 물고기를 다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행위를 보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보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둘 다 하나님의 물고기인데 역할만 다를 뿐이다. 나쁜 물고기도 조련의 임무로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이다.

우리 주변엔 반드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제발 좀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시기를 바라지만 절대 내가 사랑의 존재로 변화되기 전에는 그 사람을 먼저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그는 오히려 사랑의 선물로 주신 파트너이다. 즉 ‘너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너의 모습이니 거울로 삼아 네가 변화되라’는 뜻이 있는 것이다. 내가 변화되면 그 사람도 변화된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못 알면 미혹될 수 있으며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헛된 삶을 살게 된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하나님이 만드신 온 우주 만물과의 관계, 이웃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의미도 해석된다. 즉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착한 물고기는 자기 의에 빠져 바리새인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오, 주님. 나는 나쁜 물고기가 아님에 감사합니다. 나는 누구를 아프게도 하지 않고 주일 성수도 잘하고 십일조도 잘하니 감사합니다.” 이런 착한 물고기는 변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나쁜 물고기는 세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저를 용서해 주소서.”

나의 내면을 보고 선함이 없음에 애통해하는 자는 겸손한 자다. 그러나 나의 내면은 보지 못하고 종교 행사에만 열심을 내는 자는 자기 의에 스스로 속는다. 신앙은 마음의 중심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종교적 열심을 내도 내면의 변화가 없다면 가짜일 수 있다. 신앙을 말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봐야 한다.

교만한 자는 상대가 변하길 기도하고 겸손한 자는 내가 변하길 기도한다. 나는 내가 기준이 돼 상대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는가. 나의 사랑 없음과 용납 못함, 판단하고 정죄함을 아파하고 회개하는가.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의 이치와 자신의 생각 경험 이론을 주장하지만 겸손한 자는 문제나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한다.

교만한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나 겸손한 자는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의 법과 도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판단하고 정죄하는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편이 돼 중보하는가.

교만한 자의 영광은 자기에게 있고 겸손한 자의 영광은 하나님께 향한다.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인은 모든 것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피는 겸손한 사람이다. 교만한 자는 원망으로 하루를 마치지만 겸손한 자는 감사로 마무리한다.

교만한 사람은 만 가지 중에 부족한 하나를 보고 원망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만 가지 중에 있는 하나를 보고 감사한다. 교만한 자는 염려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겸손한 자는 겸허하게 하루를 맞이한다. 모든 것을 자원으로 삼아 내면을 가꾸고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다 보니 염려나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내가 주인인 사람은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교만한 자는 자기 뜻을 추구하지만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신앙은 내 뜻을 이루는 것도, 내가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그 뜻을 나를 통해 이루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청송교도소라는 ‘아골 골짜기’서 나를 훈련시킨 하나님

9.9㎡(3평) 남짓 되는 감방 안에서 무릎 꿇고 환희에 찬 음성으로 절규하듯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 속에 있었다. 눈물 콧물이 뒤범벅돼 한없이 울며 기도했다. 감사해서 울고 회개 자복하며 울었다. 원 없이 하나님과 만나는 감방 안의 회심 사건이었다.

회심 후 기도 제목은 “하나님, 이 손 꼭 잡고 놓지 마세요. 하나님 뜻을 알고 싶어요. 하나님 뜻을 가르쳐주세요. 작은 능력이라도 주세요”로 바뀌었다. 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셨는지 그분이 함께하신다면 나는 두 번 다시 이곳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교도소 안은 마음껏 부르짖어 기도할 수 없고 한겨울 마룻바닥에 물을 부으면 바로 얼어버릴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자정마다 깨워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방언 기도 중 환상을 봤다. 하나님은 수많은 모래 백사장을 보여 주시며 이런 감동을 주셨다.

“내가 너를 모래 속에서 찾아내었노라. 청송교도소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네가 다시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들어 쓸 때 많은 사람이 너를 통해 내게 돌아오리라.” 옆에 수감자들이 깰까 봐 수건으로 입을 막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흐느끼며 묵상으로 기도했다.

성령님께 이끌려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3일에 일독을 했다. 그때부터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고 수백 번을 통독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시 119:103)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말씀으로 가르쳐 주세요.” 말씀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무조건 성령님께 여쭸다. 말씀이 풀리지 않으면 더 강하게 기도하면서 깨닫고 알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면 ‘아, 이 말씀이구나’하고 순간순간 알게 되고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의 내용이 꿈에서 그대로 환상처럼 펼쳐지기도 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 등 성경의 여러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성경을 읽는데 글자가 크게 펼쳐지며 그 말씀이 심령에 새겨지는 은혜도 있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형제들을 섬기며 돌보는 삶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루에 14시간, 7시간 때로는 3시간 이상씩 하게 하시며 청송이란 ‘아골 골짜기’에서 나를 훈련해 가셨다.

그렇게 은혜의 시절을 보내던 1997년 어느 날, 오른쪽 등에 4㎝의 혹이 생겼다. 병명을 찾으러 수갑 2개와 포승줄에 묶여 4명의 교도관과 함께 안동종합병원에 가게 됐고, 여러 검사 끝에 혈종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죽을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 환경을 만들어 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단명이 확실하지 않으면 강제 작업을 나가야 하는데 병명이 명확해 병동에 입원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었다.

그리고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방언 기도를 하던 중 무언가 등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병은 씻은 듯 나았다. 그 후 재소자 중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면 방언이 터지고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서울 다메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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