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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소설가와 상상력

손홍규 소설가


소설의 경우 상상력이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무언가를 보여줄 때 실현되는 것이라면 이제 남은 문제는 사소하고 구체적인 무언가의 정체가 사실 혹은 진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인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한 오래된 해법 가운데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럴듯하지 않은 사실보다는 비록 거짓이라 해도 그럴듯한 거짓이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개연성, 다시 말해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이야기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가리켜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보다 더 진실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설명에 만족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소설을 쓰다 보면 이 문제가 간단하지만은 않음을 매번 느낀다. 그건 아마도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과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인 듯하다. 소설가가 된다는 건 일종의 분리이기도 하다. 한 사람 내부에 여러 정체성이 통합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처럼 행복한 상태였던 적은 없다. 소설을 쓰려면 소설가가 돼야 하고 그 순간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소설가가 된다. 문제는 소설가가 됐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내가 끊임없이 끼어든다는 점이다. 계단을 오르다 딴생각이 들어 잠깐 멈췄을 뿐인데 문득 내가 올라가던 중이었는지 내려가던 중이었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소설가와 나는 영원히 분리되지도 통합되지도 못한 채로 간신히 함께 걸어가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설가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장욱의 단편 ‘고백의 제왕’을 떠올린다. 어느 해 마지막 날 대학 시절에 역사동아리를 함께했던 이들이 송년회를 위해 모였다. 동아리 내에서 왕따였던 고백의 제왕을 부르자고 제안하면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들이 서술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곽에게는 고백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런 별명이 붙게 된 사연은 이렇다. 처음 엠티를 갔을 때 진실게임을 하다가 곽이 걸렸다. 누군가 첫 경험은 있냐는 짓궂은 질문을 했다. 웃고 지나가자는 질문이었지만 곽은 중학교 삼학년 때였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때의 정황을 무척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곽의 고백을 듣는 이들은 숨조차 죽이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곽은 누이를 사랑했다 고백하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칼로 찔렀다고 고백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곽의 고백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듣는 이들 모두가 그런 의구심을 품고서도 코웃음치지 못한 이유는 곽의 묘사가 자세하고 자연스러운데다 생동감이 넘쳐서였다. 결국 어느 술자리에서 곽의 또 다른 고백 탓에 주먹다짐이 벌어지고 그 이후로 곽은 사라지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곽이 동아리에 나오지 않게 된 뒤로도 곽의 동기들은 저마다 개인적으로 곽과 관계를 맺으면서 각자의 고민을 곽에게 고백해왔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곽은 왕따이며 그들 사이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점에서 소설과 소설가를 은유한다고 할 수 있다. 곽의 고백이 거짓임에도 사실로 받아들여 분개하는 이유는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믿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곽의 묘사가 사소하고 구체적이어서다. 이런 장면에서는 문학적 진실은 세부사항에 있다는 오래된 금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곽의 고백에 깊이 공감하고 흥분하고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벌이면서도 저마다 고백할 것들을 품은 채 남몰래 곽을 찾아가 만나는 건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소설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가는 공인된 거짓말쟁이다. 무시해도 좋고 왕따를 시켜도 괜찮은 존재다. 필요할 때 찾아가면 귀 기울여 고백을 들어주는 존재다. 타인이 고백할 수 있도록 스스로 먼저 고백하는 자인 동시에 누구나 바라면서도 똑바로 쳐다보길 꺼리는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진실이란 태양과 같아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으되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지 않던가. 비록 눈이 멀지라도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걸.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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