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광희 (19) 사진 속 한센인 생각에 온종일 눈물이…

톤즈에서 미처 돌보지 못한 사람 찾다 한센인 발견하고 복합센터 지어 후원

이광희 디자이너가 지난해 2월 남수단 톤즈의 한센인복합센터 공사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 사람들이 해가 질 무렵 사물의 윤곽이 흐려져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광야에 그 시간이 찾아왔다. 톤즈에서 버림받은 한센인들을 찾아 트럭에 싣고 온 밀가루를 나눠주고 현장에서 막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저 멀리 검은 실루엣의 남자가 성큼성큼 내가 탄 트럭으로 다가왔다. 190㎝를 넘는 딩카족 남성은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한쪽은 녹은 것처럼 무너져 눈도 사라졌다. 왼쪽 팔도 없었다.

나를 해칠 늑대라 여겼을까, 섬뜩했다. 조심스럽게 차창과 문을 잠갔다. 잠시 후 그 남자가 밀가루를 받지 못해 절박한 심정으로 트럭을 찾아 왔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2015년 2월 그 남자와의 만남은 새로운 시작이 됐다. 한센인을 위한 공간을 짓는 일 말이다.

물론 그 남자 때문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었다. 매년 톤즈를 찾던 나는 1년 전인 2014년 무릎 수술을 받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대신해 희망고 직원을 톤즈에 보내며 숙제를 줬다. 그곳에서 우리가 돌보지 못한 어려운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직원이 가져온 사진에 한센인들이 있었다. 의료사업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했고 사진만으로도 보기 부담스러워 덮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후 처음 톤즈를 다녀왔을 때처럼 뜨거운 눈물이 온종일 쏟아졌다. 새벽녘에는 특별한 꿈을 꿨다. 사진 속 한센인들이 말 그대로 ‘퍽퍽’ 내게 안기는 꿈이었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남편은 희망고 때와 달리 한센인 봉사는 말렸다. 그럴 만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한센병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한센인이 내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꾼 이후 두려움이 씻은 듯 없어졌다. 간절히 만나고 싶은 마음만 강해졌다.

목발을 하고 한센인들을 만나기 위해 톤즈로 떠났다. 그렇게 이 남자를 만났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600여명이 사는 한센인 마을에 예배 공간과 교육 및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물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도 준비하기로 했다.

2019년 8월 한센인 복합센터를 완공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한국과 케냐의 유명 건축가와 선교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가 여러 이유로 돌아서면서 책임자가 여섯 차례 바뀌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세운 건 톤즈 사람들이었다. 벽돌을 날라 쌓고 정성껏 페인트칠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힘을 얻었다. ‘희망고 빌리지’ 재봉학교 졸업생들은 옷과 침대커버를 만들어줬다. 완공에 앞서 찾은 한센인 마을에서 그들은 내게 “너를 보내주신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시다”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했다.

한센인 마을 가정에 두 달 치 밀가루를 준 뒤 그들과 신명 나는 잔치를 벌였다. 김혜자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너 정말 대단하다. 바늘로 바위를 뚫었구나” 말씀하셨다. 바늘로 옷을 만들던 내가 바늘로 바위를 뚫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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