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기의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는데 벌써 ‘위기 이후의 위기’를 걱정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미래를 즐겨 예측하는 몇몇 학자들과 이에 편승하는 호사가들은 이미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를 논한다. 우리는 코로나가 사라진 뒤에도 코로나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코로나 이전의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일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태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그 의미를 분석하고 해명하기에도 버거운 나로서는 감히 미래를 예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코로나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위기에 대한 대응이 위기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중세에 페스트가 발병해 중앙아시아에서 흑해를 건너 유럽에까지 퍼지는 데 2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몇 달 만에 전 세계를 감염시킨 코로나 전염 속도와 규모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코로나 위기가 근본적인 이유이다.

코로나 위기는 실제로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가혹하게 시험하고 있다. 자유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적나라한 경쟁을 부추기기만 한 자본주의는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국민 이익을 대변한다는 민주주의는 대중에 영합함으로써 뒤로는 신권위주의를 끌어들였다. 사회 양극화와 신권위주의, 이것은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전에도 심각하게 진행된 우리 사회의 병이었다. 코로나 위기는 이러한 제도적 취약점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이미 악성 포퓰리즘에 감염되고 새로운 형식의 민주적 독재라고 할 수 있는 신권위주의에 둔감한 나라일수록 코로나 팬데믹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그러므로 코로나 위기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할 새로운 ‘대안’을 강구하고 발전시키라는 시대적 요구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코로나가 고약한 것은 코로나 위기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는 사회적 문제를 폭로하는 동시에 은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 정부의 무능과 실정, 정치인들의 부도덕한 행위 등 수많은 문제점을 단숨에 덮어버리고 바이러스 퇴치에만 집중하게 만든 것이 바로 코로나 위기다. 새로운 신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이참에 코로나 위기를 이용해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우리가 건강에 신경 쓰는 동안 다른 문제들은 잊혀진다. 기득권 세력은 코로나를 체제의 문제를 덮는 마스크로 활용하고,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공고하게 한다. 이것이 코로나 이후의 진짜 위기다.

우리는 코로나 위기로 감춰진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어 정면으로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 정책들에 대한 대안을 발전시키고,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될 때까지 대안이 살아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빨리 전염병을 퇴치했는가가 아닐 것이다. 현재도 진행형이고 코로나 위기로 가속화될 사회적 문제와 경향을 포착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어떻게 마련하는가가 포스트 코로나 사회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정치는 실제로 대안을 둘러싼 투쟁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공정한 경쟁이 정치이다. 코로나가 뒤집어 놓은 한국의 정치 지형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보수 정당은 대안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해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 위기를 나름 잘 관리한 집권 여당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코로나 이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옛것은 죽어가고 새로운 세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전환기에는 괴물이 탄생한다고 했던가. 이제는 확실하게 기득권이 된 진보 여당이 권력의 관성을 이겨내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우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