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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전문가 정은경’을 생각하며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열흘 넘게 10명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16일 이후 39일 만에 사망자 수 0명을 기록하는 희소식도 있었다. 이 전대미문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안도감을 나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매일 아침 그의 입에 전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사람. 질병 정국에서 총리보다 대통령보다 더 단단한 신뢰감을 줬던 사람.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염색할 시간도 없어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그대로 둔 채 폼 나지 않는 누런 의료용 재킷을 입고 그날의 코로나 상황을 브리핑하는 그를 두고 외신은 영웅이라 불렀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샘 워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각국 보건 당국 책임자들이 부상한 상황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카리스마 있고 자존심 강하고 정치적으로 계산적인 선출직 지도자보다 전문 관료가 진짜 영웅”이라고 했다.

어떤 이미지의 포장도, 정치적 구호도 없었다. 정은경으로 대표되는 질병 전문가들은 오로지 팩트 그 자체와 이에 대한 해석의 전문성을 무기로 우리 일상의 가이드가 됐다. 그는 SNS도 하지 않는다. 국민적 관심을 이용해 자신을 알리려는 어떤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우직한 전문가였다.

코로나19 시대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것은 ‘전문가의 재발견’이다. 진영의 양극단에서 아전인수식 해석과 ‘빠’에 기대는 선동 정치로 국민을 분열에 빠트리는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적 관료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좌도 우도 전문가인 그녀는 믿었다.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본 질병예방센터장으로 일하며 경험과 교훈을 쌓았다. 그때 일하던 모습이 눈에 띄어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며 차관급인 본부장으로 발탁된 것으로 전해진다. 메르스가 지역사회 감염으로까지 번지지 않아 국민 눈에 덜 띈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때 지금처럼 대중적 스타로 부상했다면 2016년 20대 총선 때 ‘인재 영입’이라며 차출됐을 게 뻔했다. 앞으로도 모를 일이다. 다음 총선, 혹은 재보궐 선거에서 차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전문가인 그가 앞으로도 지금의 현장에 계속 있기를 희망한다. 구호와 카리스마가 주목받던 고성장의 산업화 시대는 지났다. 환경, 노동, 보건, 복지, 여성, 경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존경받으며 역량을 발휘할 때 저성장 시대를 헤쳐갈 수 있다.

다당제가 아닌 양당 구도 하에서 전문가들은 정치권에 들어가 봤자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다. 정치평론가 김홍국씨는 “양당제 구도에선 정치가 정책 대결이 아닌 극한 대립으로 흐르다보니 싸움 잘하고 기획 전략을 잘 세우는 사람이 각광 받는다”며 “여야가 선거철만 되면 환경, 보건, 경제 등 분야별 전문가를 영입하지만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긴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가슴에 금배지를 단 ‘4년 계약직 공무원’에 국민 세금으로 너무나 많은 특권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연봉은 각종 수당을 합치면 2억3000만원이나 된다. 평년 기준 연간 1억5000만원까지 거둘 수 있는 정치후원금까지 합치면 사실상의 연봉은 3억8000만원이다. 보좌진·비서진 총 9명까지 둘 수 있는 사무실 운영비에 연 4억9000만원도 별도로 지원한다. 그러니 교수도, 기자도, 변호사도, 노동자도 ‘기승전금배지’로 돌진한다. 특정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특권은 국가 차원에서 인적 자원 재분배의 왜곡을 낳는다.

4·15 총선 결과 21대 국회는 양당제 구조로 환원됐다.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해야 할 일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정은경 같은 전문가들이 제 대접을 받을 수 있게끔 금배지의 특권을 내려놓고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 개혁을 하는 일. 그것이 코로나19 사태가 발견한 전문가의 나라가 되는 일이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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