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책에는 초월적인 힘과 능력의 주인공들이 넘쳐난다. 극상류층의 삶은 언제나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고, 인기 영화나 만화에서는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가상의 이야기뿐 아니라 뉴스에서도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고 극적인 성공을 거머쥔 신데렐라들을 다룬다. 그리고 지금,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나라마다 자국 영웅들에 대한 미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에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동물과 달리 상상하고 희망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희망을 투영해 상상의 극한, 극단적인 최상의 삶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반인반신의 신화와 영웅, 왕과 귀족 제도였다면 지금은 연예인과 극상류층, 영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희망에는 양면이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대상 연구에서 다른 요소들을 제외하고 분석해도, 무언가에 희망과 의미를 두었던 이들보다 묵묵히 삶의 패턴을 유지했던 사람들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고 한다. 종전과 곧 풀려날 것이라는 헛된 약속, 생일 등 특정 시기에 희망을 걸었던 이들은 그 날짜가 지나면 급속도로 무너졌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전력투구 중인 지금, 많은 전문가는 영웅들이 함께하는 이 시기 너머를 경계하고 있다. 일차적 충격과 혼란의 시기 뒤에 그간 미처 티 낼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던, 희망에 지쳐 넘어진 이들의 아픔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영웅들을 깎아내리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덧입히고, 부푼 희망의 풍선에만 매달려서는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구전은 영웅 홀로 다 해결해내기보다 금수나 미물과도 협력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더불어 사는 이야기가 많다. 우리도 일희일비 휘둘리지 말고, 함께 이 긴긴 봄을 무사히 넘겼으면 좋겠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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