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네 명의 훈남이 등장하는 ‘신사의 품격’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서양으로 눈을 돌리면 소설 속 주인공인 러시아 귀족 로스토프 백작이 품격 있는 신사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체제의 적폐로 몰려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우연히 쓴 시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 종신 연금생활을 한다. 귀족으로서의 생활이 아닌 웨이터로 32년을 보내지만 결코 자신의 정체성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굳은 신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서슬 퍼런 공산주의 사회였음에도 무조건적 복종과 영혼 없는 순응 대신 주변 사람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선택한 그는 결국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게 됐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경제 활동의 제한이 풀리지 않아 두 달째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가 격리 중이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생활 리듬도 불규칙해지고, 일상의 원동력이었던 적당한 긴장감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무기력으로 변모해서 하루하루가 탄성 잃은 고무줄처럼 힘이 빠져 버렸다. 고양이 세수만 겨우 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러다 우울증이라도 생길 듯하다. 주 정부 판사가 자신이 주관하는 온라인 회의에 변호사들이 옷도 제대로 안 갖춰 입고 나타난 것에 관해 불평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태만이 나만의 일탈이 아니고 팬데믹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에 약간의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직업윤리와 규범들이 점점 더 실종되고 있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 가운데 일부의 행동은 품위 있음과 거리가 멀다. 그저 서울 강남의 아파트와 그럴듯한 전문직업으로 만들어진 경제적 여유가 품위의 출발점이라고 믿는 듯하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마땅히 갖춰야 할 품위가 궁금하다면?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어보시라고 말하련다.

황훈정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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