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 “여보 미안, 작년부터 ‘밥퍼’ 시작했어” 남편 통보에…

“이미 당신이 내 결정에 동의했다고 믿어”

다일영성수련원장 김연수 사모가 남편 최일도 목사와 함께 2015년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찍은 사진. 다일천사병원에서 척추측만증 치료를 받은 뽀안(가운데)도 함께했다.

1989년 7월, 그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조용히 얘기 좀 하자던 남편이 그간의 일들을 털어놨다.

“여보, 미안해. 당신하고 먼저 의논해야 했는데, 나 작년 가을에 다일공동체를 시작했어. 할아버지들과 행려자들에게 라면 끓여주는 일로 시작된 거야. 물론 당신과 함께.”

나는 너무나 놀라고 당황했다. ‘내가 언제?’ 턱밑까지 올라온 질문을 꿀꺽 삼켰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의 말은 계속됐다. “당신은 한 번도 내 결정에 안 따른 일이 없으니 이미 당신이 내 결정에 동의했다고 믿어.” 기가 막혔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결정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무조건 따라 줘야 해. 나 교회 개척할 거야. 청량리에서.”

내 남편은 ‘밥퍼’로 유명한 최일도 목사다. 그동안 남편이 하는 일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빈민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던데, 설마 계속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간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사인을 남편에게 수없이 보냈다.

그러나 끝내 남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남편의 음성이 확고부동한 의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잘됐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명색이 10년 넘게 수도했는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 돌보는 일을 극구 반대했으니 마음 한구석에는 자책과 죄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밥퍼 사역은 이렇게 당황스러움과 자책감 사이에서 시작됐다. 내 뜻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징집돼 이 길을 걸은 지도 햇수로 벌써 32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걸어온 길이 꽃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걸었던 것 같다.

“먹는 사람이 일한다. 먹다 망한 집은 없다.” 요즘 들어 어머니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인심이 좋았다. 손님들이 돌아갈 때면 고추 한 근, 찹쌀 한 되, 마늘 한 접이라도 싸 주셨다. 어떤 이는 아침부터 와서 점심까지 먹고 갔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왜 우리는 남들에게 먹는 걸 주고 그래야 해?”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문전성시 이룬 집이 성공하는 거지, 집에 손님 한 명 없으면 그 집은 망한 집이야”라며 “그런 말 마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연습을 시킨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어머니께 물려받지 않았나 싶다.

부창부수라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셨다. 아버지는 동네 이웃이 이사갈 때면 전날 들러 “내일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게”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 시절엔 이사를 가려면 전날 짐을 다 싸 놨다. 아침밥을 짓기위해 싸놓은 짐에서 식기를 다시 꺼내고 넣는 일이 번잡스러우니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오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밥 먹고 떠난 이웃은 1~2년 뒤 고향을 찾을 때 꼭 우리 집을 다시 찾았다.

아버지는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한 번은 늦은 밤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 우리 가족을 당황시켰다.

김연수 다일영성수련원장 약력=수도여자사범대학 국어국문학과, 서강대 신학대학원 신학과 졸업. 1978년 '시문학'으로 등단. 다일복지재단 상임이사·상임대표 역임. 현 다일영성수련원장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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