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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거대한 오판, 무서운 심판

김용태 미래통합당 의원


적지 않은 분들이 21대 총선 후보였던 나에게 왜 미래통합당이 참패했는지 묻는다. 각계 전문가들의 예리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통합당 내부, 특히 일선에서 뛰었던 후보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정권 심판 이슈가 다 묻혔고 국기 결집 효과(rally round the flag effect)로 인해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국민들의 지지가 쏠렸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선거 막판,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변형된 돈 선거 때문이라는 분석도 우리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통합당은 왜 참패했는가’라는 질문을 ‘후보 당신은 참패하리라 짐작했는가’로 바꾸면 참패의 또 다른 원인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나는 이번 선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참패할 줄은 까맣게 몰랐다. 더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나 스스로 매우 냉정하게 선거를 바라보는 현장 전문가인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형세 판단을 지극히 보수적으로 하면서 정당 지지 열세를 뒤집어 이겨 왔다. 사실 기울어진 선거 운동장과 우리들이 보여준 조잡한 선거 캠페인을 감안할 때 참패를 면하는 게 지상과제였지만 나는 귀신에 홀린 듯 형세 판단을 완벽하게 그르쳤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후보는 유권자와 만나며 선거 흐름을 몸으로 느낀다. 형세가 손으로 만져지듯 질감이 느껴진다. 코로나 때문에 제한을 받았지만 이번에 만나본 유권자들은 매우 지친 상태였고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 사태로 더 악화됐지만 그 이전부터 좋지 않았다는 것이 이분들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분들에게 물어 보았다. “문재인정부 잘하고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선거 향방을 가를 줄 알았다. 이분들의 대답은 감사하게도 “잘하기는 무슨…?”이었다. 나는 내심 안심했다. ‘그럼 그렇지. 경제가 이 모양인데 유권자들 표심이 어디로 가겠나? 이미 정권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야. 더욱이 코로나 때문에 정권 심판의 분노는 더 커질 거야.’

나의 거대한 오판은 ‘그 다음 질문’을 빼먹은 데서 시작됐고 참패로 귀결됐다. “그럼, 우리 미래통합당은요?” 도도한 사회 변동과 국민 의식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둥, 숱한 선거 이론에 따른 고도화된 정치 캠페인에서 밀렸다는 둥, 총선은 경제 성과에 따른 집권세력에 대한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라는 말만 믿고 코로나 영향을 과소 평가했다는 둥 그 어떤 분석도 내가 빼먹은 ‘마지막 질문’보다 무거울 수 없다.

나는 선거 전부터 보수의 통합과 혁신이 승리의 전제라고 주장해 왔다. 통합당은 완전치는 않지만 탄핵 이전 새누리당의 모습으로 통합됐다. 공천 과정에서 잡음은 있었지만 나름 인적 혁신도 이루었다. 워낙 현장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고, 유권자가 느끼는 고통과 불안이 컸기 때문에 그간 통합당이 보여준 모습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국민들은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문재인정부를 심판해도 우리가 하지, 당신들이 뭔데 하라 마라 하는가? 당신들 꼴 좀 한 번 봐라. 당신들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진다고 하는가? 그리고 품격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하는 말들이 상식적이기는 해야 하지 않는가?”

무슨 말이 필요한가? 우리의 거대한 오판이 국민의 무서운 심판으로 이어진 것을. 반구저기(反求諸己). 화살이 빗나가면 자신을 돌아봐야지 과녁을 탓하면 무엇하겠는가. 국민이 바라보는 곳에 맞춰, 저기 맨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다.

김용태 미래통합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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