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석 슈퍼 여당 출현. 4·15 총선 결과는 한마디로 천지개벽이다. 민주화운동 세력이 자타 공인 주류가 됐다. 산업화 세력은 비주류로 강등됐다. 수구 세력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 중이다. 이제야 내려놓고 떠난다는 비장함도 느껴진다. 무슨 힘이 작동했던 걸까? 누가 어떤 실기를 했나? 어디로 가야 하나? 해석과 의견이 분분하다.

미시적인 해석은 제1야당의 연이은 말실수와 헛발질에서 출발한다. ‘세월호 망언’ ‘n번방 실언’ ‘3040 비하 발언’은 중도 유권자에게 모욕의 감정을 안겼다. 바뀐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결집과 정권 심판만 부르짖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는 지적이다. 수구적 리더십, 잡음 투성이 공천, 쟁점화 실패, 선거 전략 부재, 진단은 끝이 없다.

반면 코로나 국면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여당은 무한 칭송된다. ‘한국형 방역’은 만병통치약과 같다. 선진국 방역 시스템이 속절없이 무너질 때 그 효과는 최고조에 달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가져다준 전율은 참여의 DNA를 깨웠고 사전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민주화운동 세력의 이타적 공감 능력은 덤이다. 국고는 비고 빚은 늘겠지만, 재난지원금과 긴급대출은 약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로 이해된다.

처한 위치에 따라 미래 전망은 천지 차이다. 가슴 벅참을 느끼는 쪽은 ‘큰 국가’에 미래의 희망을 건다. 한국형 방역 모델을 경제와 사회로, 외교와 안보로 확대해야 한다는 거다. ‘세계화’에 저항하고 포용적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요구다. 상실감을 느끼는 쪽은 ‘남편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측과 그래도 중원은 열려 있다는 입장으로 양분된다.

분명한 건 실용정치의 시간이 왔다는 거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가 정치의 표준이 됐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이전투구는 과거의 유산이다. 성장과 분배 사이의 경쟁도, 자본과 노동 간의 대리전도 해묵은 대립에 불과하다. 세상은 바뀌었고, 3040이란 새로운 행성 출신들은 대한민국에 제대로 똬리를 틀었다. 여기에 20이 10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이주 중이다.

실용정치는 가치와 이념을 꺾으라는 요구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명분을 내려놓고 구성원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하라는 메시지다.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세월호 사건이 갖는 트라우마와 집단적 기억을 이해하고 감싸 안으란 명령이다. 공정과 정의, 인권이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공통 자산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읽으란 충고다.

실용정치의 중요한 필요조건은 젠더 감수성이다. 선거 막판 ‘n번방 발언’으로 미래통합당은 꺾였지만, 적극 대응한 정의당은 살아났다. ‘조국’ ‘검찰’ ‘윤석열’이 선거기간 중 37만번 언급되는 동안 ‘텔레그램 n번방’은 80만번 소환됐다. ‘n번방 사건’ 청원에 500만명이 참여했을 때 기회의 창은 활짝 열렸지만, 이내 굳게 닫혔다. 누가 성평등을 앞세워 실용정치를 실현할 것인가?

‘n번방 성착취 사건’은 교육의 실패이자 정치의 실패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정치문화가 군림하는 동안 일상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재생산을 거듭했다. 여성을 착취하는 곳에 인간 존엄성이 있을 턱이 없다. 청원에 참여한 국민은 새로운 실용정치의 출발이 성평등 실현과 여성 국회의원 30% 달성, 이에 동참할 양심적 남성 세력의 확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성평등과 젠더 이슈는 진보 어젠다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2018년 미투운동을 거쳐 사회 변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여성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보수가 성평등을 끌어안을 때 그 외연은 확실히 넓어진다. 19세를 포함한 20대 여성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63.6%, 통합당 지지율 25.1%라는 출구조사는 보수 야당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비옥한 중원의 땅을 가리킨다.

21대 총선 여성 당선인은 19%(57명)로 4년 전에 비해 2% 포인트 높아졌다. 이대로 여성 국회의원 30%를 달성하려면 2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을 누가 얼마나 빨리 단축시킬 것인가? 실용정치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방역 드라마에서 국민들은 정은경 ‘방역 대통령’에 열광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또 공감하는 리더십의 효과는 어쩌면 이낙연 전 총리의 겸손 리더십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젠더 감수성을 선점하는 자가 새로운 시대를 열고, 중원을 차지할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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