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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갈망은 죄성이 제거된 정결한 신부 일어나는 것

정광재 목사의 형상회복 <3> 신부 단장

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가운데 왼쪽)가 2008년 태국 잔타브리교도소 관계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정 목사는 매년 국내외 교소도를 방문하고 교정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바다는 겉보기엔 깨끗하고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엔 온갖 쓰레기와 폐기물이 가라앉아 있다. 어쩌다 태풍이 불면 바다는 그 속내를 토해 낸다.

우리의 내면에도 상처의 찌꺼기가 가라앉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불순물(죄)을 제거하시려고 환경과 여건을 동원하신다. 태풍이 바다의 속을 뒤집어 정화하듯 하나님은 고난과 환난의 태풍으로 우리 속을 들추어 정화하신다.

하지만 반항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태풍을 보내시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금식하며 조른다. 돈을 달라, 집을 달라, 차를 달라, 좋은 학교 보내 달라 등등….

심지어 집을 나가 버리겠다(교회 안 다니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자녀의 이런 ‘반항 행동’에 하나님의 가슴은 무너진다. 우리의 시선이 본질에서 너무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부름 받지 않았다. 예수님도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지 않으셨다.

물론 삶의 필요를 위해 기도는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 우리가 아버지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다른 필요를 채워주신다. 우리는 더 위대한 것을 위해 부름 받았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이 힘들다고 바꿔달라 하지 말고 내가 그 환경에 적응하며 견뎌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그 환경을 바꾸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을 결코 낭비하는 분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이 시간 우리를 단련해서 정금같이 만드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정화된 우리의 내면에 하늘의 것을 넘치게 부어 주신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물이 들어 빛을 발하고 예수님의 향기를 뿜으며 증인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삶이다.(갈 2:20)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누리게 된다.

이 땅에서 허락된 시간은 신부 단장의 시간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모두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청함 받은 자가 다 택함 받지는 않음을 말씀하신다.

주님의 간절한 갈망은 죄성이 제거된 정결한 신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외적인 행위의 거룩함이 아니다. 그 마음이 청결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고 영광의 임재로 삶이 빛이 되고 향이 되는 거룩한 신부를 세우길 원하신다.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자”가 누구인가.(아 6:10)

주님은 오늘도 신부를 찾고 계신다. 주님이 애타게 찾으시는 한 사람, 바로 우리다. 그동안 많은 성경 공부와 훈련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다면 이제 ‘하나님을 아는’ 참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신앙은 심(心)부름, 마음의 부름이다. 간절한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선 내 안의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깨끗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그분만의 시간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너무 조급해 참지 못하고 자꾸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유업을 이을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에 얼마나 많이 열심을 내는가.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은 일에 열심을 낸다. 그것은 자기의 일이며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다. 스스로 속고 있다. 이스마엘에게 매여서 이삭을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하신다.

사역자 중에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아닌 자신의 소견대로 사역하는 사람이 있다. 사역이 열린다고, 그것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무조건 좇을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렵더라도, 힘이 들더라도 하나님이 뜻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을 가야 한다. 유행처럼 너도나도 인기 있는 사역을 하려 하고 세상 문화에 타협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이스마엘일 뿐이다.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낳게 되면 하나님의 시간은 자꾸 지연되고 아픔과 여러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과 아픔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식을 쫓아낼 정도의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게 된다. 내가 약속을 이루려고 하는 자기 주도적인 교만함의 결과다.

우리의 자아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 맡겨야 한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교도소 생활 동안 수용자·교도관 3000여명에게 복음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체험하고 인생이 180도 변화됐다. 1990년대 후반 경북 청송 제1감호소는 하루에 딱 한 번 운동시간을 20분 줬다. 일과 중 유일하게 통제받지 않는 자유시간이었다. 그 황금 같은 시간에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운동장 화장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쓰레기를 주우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닦아 주셔서 온전히 하나님 마음을 닮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저는 정말로 연약한 자입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저를 버리지 마시고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써 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하면 내면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자주 들려왔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세계 민족 위에 존귀하게 만들어 나를 증거하는 자로 쓸 것이다. 나의 영광을 위해 너를 새롭게 할 것이다.”

기쁨과 감사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돼 울면서 맨손으로 수용자들이 사용한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했다. 다들 나를 미쳤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 울며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그리고 기도했다. “이곳의 형제들에게도 저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만나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수용자들에게는 주 1회 20분의 공동목욕탕 이용 기회가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기쁨으로 거동을 못 하는 환자 수용자들을 씻기고 업고 다녔다. 시간이 부족해 정작 나는 씻지도 못했다.

방에 돌아온 후 화장실에서 한겨울에 얼음 같은 찬물로 목욕하며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아리고 쓰린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고통은 잠시뿐, 내 몸은 성령님의 은혜로 따스한 온기가 생겼고 마음속에는 기쁨과 감사가 올라왔다.

성령님께선 “내가 너를 깨끗하게 씻어서 사용할 것이다”라는 음성도 종종 들려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로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써 주세요”라는 고백을 수없이 했다.

병동에 입원했던 2년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복음도 마음껏 전할 수 있어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교도소 생활 동안 어림잡아 3000명의 수용자와 교도관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중 같은 방에 수감됐던 동료들이 훗날 목사, 전도사가 되는 은혜도 있었다. 당시 교도관과 수용자들은 나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전도한 사람 중엔 교도관과 재소자들도 싫어하는 사고뭉치 형제가 있었다. 그는 내가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할 때면 어김없이 등과 허리에 발길질을 해댔다. 그럴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 형제를 변화시켜 주세요. 저를 만나 주신 하나님,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저 형제를 만나 주세요.”

어느 날 저녁, 그 형제가 혈압이 오르는지 목이 뻣뻣하고 머리도 너무 아프다며 괴로워했다. 그래서 옆에 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 이분을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는데 내면으로부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이런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었노라. 내가 이 영혼을 사랑하노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순간 형제가 입을 열었다. “노래 한번 불러 보더랑께. 찬송 싸게 싸게 불러 보더라고.” 내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을 부르자 형제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광재가 믿는 하나님 내가 한번 믿어보지”라고 했다. 그 눈빛에 진실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교도소 안에서 소중한 영적 체험을 했다. 사명훈련, 제자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점점 다듬어져 갔다.


정광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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