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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시대가 원하는 만화 한 발 앞서 그린 ‘카멜레온’

(18) ‘식객’ 허영만

만화가 허영만은 고전 ‘서유기’를 비튼 ‘날아라 슈퍼보드’와 한국형 영웅물 ‘각시탈’, 음식 만화 ‘식객’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이 바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발굴한 작가였다. 꼼꼼한 취재로 구현한 정교한 서사가 그의 장기로 꼽힌다. 연합뉴스

허영만(사진)은 1974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특정 장르에 집중하지 않고 시대별로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80년대 만화방 만화에서는 장르의 틀을 벗어나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25㎏을 감량하고 링 위에 선 이강토를 그린 ‘무당거미’(1981), 스포츠 만화면서도 염세적 분위기를 담은 ‘카멜레온의 시’(1986), 기업만화지만 성공과 복수를 보여주지 않는 ‘퇴역전선’(1986) 등의 만화는 독자들을 고민에 빠트렸다. 야구, 권투, 축구같은 익숙한 스포츠가 아니라 ‘동체이륙’(1987)에서는 모터사이클을, ‘2시간 10분’(1987)에서는 마라톤을 보여줬다. 허영만은 1980년대 새롭게 성장한 청소년과 성인들이 원하는, 성숙한 만화를 보여줬다.

하지만 같은 시기 어린이 잡지에 연재한 야구만화 ‘태양을 향해 달려라’(1979), ‘10번 타자’(1982), ‘태풍의 다이아몬드’(1982), ‘태풍스트라이크’(1982)는 달랐다. 어린이를 위한 스포츠 만화는 우정, 노력, 웃음이 중요했다. 삶의 어두움을 조명한 만화방 만화와 달리 어린이 잡지 만화는 삶의 밝은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10번 타자’ ‘태양을 향해 달려라’ 커버와 동명 만화를 각색한 영화 ‘타짜’ 포스터(왼쪽부터 차례대로). 필자 제공

허영만은 시대가 원하는 만화를 한발 앞서 그렸고, 독자들은 ‘허영만’이라는 이름을 신뢰했다. 1988년 연재한 ‘오! 한강’은 한국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마주한 최초의 만화였다. 1990년 첫 시리즈가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수퍼보드’는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허영만 특유의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애니메이션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1990년대 만화들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실감 나는 드라마를 보여주었다. 자동차 산업(‘아스팔트 사나이’), 속옷회사(‘미스터Q’), 자동차 영업(‘세일즈맨’), 정치(‘닭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온다’)처럼 기존 만화에서 볼 수 없던 전문영역을 만화로 끌어왔다. 1990년대에는 그의 시도로 한국만화의 전문성이 더 강화되었다. 1990년대 새로운 청소년 독자를 위해 1994년부터 ‘영챔프’에 연재한 ‘비트’에서는 작화 스타일을 바꾸고, 허영만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이강토’를 버리는 모험을 시도했다. 결과는 밝고 트렌디하지만 청춘의 상처를 대변하는 캐릭터 ‘민이’가 탄생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날아라 수퍼보드’ ‘벽’.

거침없는 질주

매번 오랜 팬들도 당혹스러울 정도로 허영만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익숙함에 안주하기보다는 대안을 찾아 도전했다. 1974년 발표한 ‘각시탈’이 당시 만화방 만화의 최고 히트작이었지만, 시장을 양분한 대형 만화출판사의 횡포에 맞서 비주류 작가출판 ‘땡이문고’에 합류했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새로운 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어린이 잡지, 만화전문잡지, 스포츠신문을 거쳐 2003년부터 ‘동아일보’에 음식 만화 ‘식객’을 연재했다. 지금이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만화지만, 첫 연재를 시작한 2003년만 해도 만화잡지와 스포츠 신문의 불황에 맞서 새로운 장르와 연재 매체를 스스로 찾아간 작품이었다.

‘식객’은 일본만화에서 자리 잡은 음식 만화를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한국화시켰다. 일본만화처럼 요리 과정에서 대결하기보다는 개별 음식이 지닌 드라마를 풍부하게 완성했다. 만화에 낯선 일반 독자들을 위해 일간신문에 연재한 뒤 서점용 단행본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만화생태계를 만들었다. ‘식객’처럼 성공한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각시탈’의 땡이문고 합류도 거대출판사의 횡포로 실패했고, 2011년 다큐멘터리와 결합한 웹툰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13년에는 카카오페이지에 ‘식객2’를 연재했지만, 초기 사용자가 많지 않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허영만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2020년 현재 그는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매번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허영만의 힘은 왕성한 호기심과 탁월한 자기 제어에 있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수많은 참고 서적을 읽고, 자문해 줄 전문가를 만나고, 취재에 나섰다. 허영만 화실 출신인 윤태호는 2013년 한 신문에 실린 ‘39년간 히트만화 제조기, 만화가 허영만’이란 기사에서 “연재 원고 1회분(25~30쪽)을 그리면 참고서적이 20~30권 쌓였다. 취재 갔다 돌아와 화실 여직원에게 비닐봉지를 건네면 24~36컷 필름 통이 도토리처럼 쏟아졌다”고 회고했다.

만화 작업을 위한 체험과 공부에도 선뜻 나선다. 2002년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2009년 경기도 전곡항을 떠나 서해안과 남해안을 지나 제주도를 거쳐 동해로 들어가 독도까지 총 3057㎞를 11개월에 걸쳐 한 달에 3일씩 요트로 일주했다. 관상 만화 ‘꼴’을 그리기 위해 2006년 매주 1회씩 역술인 신기원과 앉아 역술서를 공부했다. 한의학 만화 ‘동의보감’을 위해서는 한의사 세 명에게 한의학을 배웠다. ‘식객’의 힘도 취재에 있다는 건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만화창작을 위해서 자신의 생활방식도 바꿨다. 그의 화실 벽면에는 2013년 3월 20일에 쓴 ‘아침: 스트레칭, 점심 후: 1시간 등산, 술: 1잔(소주 물타서)’라는 메모가 붙어있다. 메모하고, 사진 찍고, 전문가를 만나 공부하는 후천적 노력이 카멜레온 같은 변신의 작가 허영만을 만들었다.

허영만의 이정표, ‘각시탈’

허영만은 1948년 여수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여수고등학교 재학시절 가세가 기울어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1966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상경해 박문윤 화실에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일이 없었다. 결국, 시대 감각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 못해 팀이 해체됐다. 허영만은 박문윤의 소개로 엄희자 화실에 합류한다. 7개월간 엄희자 화실에서 순정만화를 그리다 1968년 이향원 화실로 옮긴다.

사진은 작가 출세작인 ‘각시탈’ 표지.

허영만은 서울로 올라온지 9년 만에 데뷔했다.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작품은 데뷔 후 네 번째 작품인 ‘각시탈’(1974)이다. 바보처럼 행동하는 형 김인과 헌병대에서 독립운동가를 붙잡는 형사로 일하는 동생 김영이 주인공이다. 형제 모두 태권도 고수고, 형 김인이 각시탈로 활동한다. 헌병대에서 활동하던 김영은 각시탈에게 총을 쏘고, 각시탈이 형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각시탈은 형님이었다. 내가 형님을 쏴 죽인 것이다. 이 손으로 나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다. 나는 미련하게도 그제야 과오를 깨달았다.” 이후 동생이 형을 대신해 각시탈로 활동을 한다.

‘각시탈’은 이후 허영만 만화의 이정표가 된다. 평소에는 일부러 바보를 가장한 우스개 캐릭터지만 웃음 뒤 형을 죽인 마음의 상처를 지닌 문제적 주인공은 이후 1980년대 허영만 만화에서 다양하게 변주돼 등장한다. 바보를 위장한 우스개 캐릭터가 주는 ‘티키타카’식 코미디는 1980년대 어린이 잡지에 연재된 스포츠 만화로 이어졌다. 특히 고릴라가 등장하는 야구만화 ‘제7구단’(1985) 이후 허영만의 스포츠 만화는 코미디로 특화된다.

출세를 목표로 일제를 위해 일하다 어머니와 형을 죽게 만든 비극적 캐릭터는 ‘무당거미’로 이어진다. 천부적인 권투 잠재력이 있지만, 먹는 걸 좋아해 늘 감량에 실패하는 이강토는 경쟁사의 음모에 휘말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자책한 이강토는 산속에 들어가 해골처럼 마른 몸이 되어 나타난 권투에 몰입한다. 매번 감량의 극한 고통을 겪으며 경기에 나서는 이강토를 끌어내는 건 아버지의 한이다.

1980년대부터 여러 스토리 작가와 협업으로 작품을 하지만 주인공의 비장함은 잃지 않는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매번 주인공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전문소재에 집중한 1990년대 스포츠 신문 연재만화도 비극의 비장함을 버리지 않는다. 자동차 산업을 뛰어난 리얼리티로 그려낸 ‘아스팔트 사나이’가 대표적이다.

‘식객’에 이르러서는 우스개 캐릭터도 빠지고, 비극도 사라진다. ‘각시탈’에서 시작된 비장미 넘치는 비극은 1980년대 만화방 만화로 계승되었고, 1990년대 스포츠신문 만화로도 DNA가 연결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연재된 ‘식객’은 비장미를 빼고 전문성에 집중했다. 희비극이 교차하는 작품과 어린이·성인을 위한 만화, 그리고 지식만화까지. 허영만은 늘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2020년 지금도 손에 익은 펜을 버리고 디지털 도구와 함께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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