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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풍경화] 느릿느릿 기이이이이일게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마라톤을 취미로 삼아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내가 세운 목표는 ‘100살까지 달리는 것’이었다. 백번째 생일을 맞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홀로 42.195㎞를 달리고 가족들과 따뜻한 점심 식사를 나누고 싶다. 친구들은 “그게 가능해?” 하며 지나친 욕심이라 말하지만 지난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보니 풀코스 최고령 참가자 연세가 91세더라. 인류 건강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100살까지 달리는 목표도 거뜬히 가능하리라 본다.

낼모레면 쉰인데 마라톤 시작이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니냐 걱정하는 친구도 있지만 여전히 50년은 시간이 남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길이만큼 앞으로 달릴 수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달리기 방식은 오래, 천천히 달리는 것! 이제 와 엘리트 육상선수가 되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른 이의 기록을 부러워할 이유 없고, 내 기록을 부끄럽게 여길 까닭 또한 없다. 달린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고, 완주만이 자랑이다. 설령 완주하지 못하면 또 어떤가. 주위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길게,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기이이이이일게. 이것만 뚜렷한 목표다.

길게 보면 너그러워진다. 마음의 창고에 여유가 생기고 몸가짐 또한 달라진다. 사뭇 너른 안목으로 바라보게 된다. 얼마간 뜨내기로 장사하다 훌쩍 자리를 떠날 사람이라면 더러 손님에게 불친절할 수 있고, 혹여 이익을 위해 양심을 속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한자리에서 토박이로 오래 장사하려 다짐한 사람이라면 생각과 행동, 표정과 말투, 청소와 위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상 많은 일이 그렇다.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이 문을 연 지 오늘로 7주년을 맞았다. 처음 편의점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원래 편의점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맡게 되었는데, 삼사년 하다 말겠지 했던 일이 오늘에 닿았다.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자’ 말하지만 편의점을 향한 내 첫 마음은 이리도 얄팍하여 돌아갈 곳이 없다. 궁여지책 지금의 마음을 돌아본다. 시간의 흔적은 경험과 각오로써 또렷이 나이테를 남겨놓는 것일까. 이제는 이것이 삶이자 운명이고 뗄 수 없는 자화상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덧 나는 편의점이 되었다.

근무복 매무새를 가다듬고 오늘은 평소보다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편의점도 마라톤도 살아가는 모든 일도, 길게, 길게. 가늘고 느리더라도 기이이이이일게. 달리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는 순간이 있을 테고, 때로 부상을 당하거나 이런저런 일로 잠깐 쉬어야 하는 단절의 시간마저 겪겠지만, 어쨌든 달릴 것이다. 편의점도 그러할 것이다. 7주년을 맞는 기념의 아침에 새끼손가락 걸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언제나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거야!”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확실하다. 언제나 나는 느릿느릿 달릴 것이다. 기이이이이인 여정의 한 걸음을 오늘도 내디딜 것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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