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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코로나19와 요양병원의 어버이날

정진영 종교국장


한 달 전쯤 고교 후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빈소가 차려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장례식장 주차장을 폐쇄했고 발열검사와 개인정보 확인 후 비표를 받은 조문객만 들어가게 했다. 사진 속의 고인은 80대 초반이라기엔 고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금융회사 부사장인 후배는 “몇 달 동안 요양병원의 면회가 금지돼 제대로 뵙지도 못했는데 그만 가셨다”며 허탈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라 상가는 썰렁했다.

역병은 천륜의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회사 동료의 모친은 수년째 서울 인근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는 “지난 4일부터 면회가 일부 재개됐다는 간병인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형님과 함께 당장 찾아뵐 생각”이라고 기뻐했다. 대구 출신인 내 주변엔 고향 부모를 걱정하는 지인이 많다. 한 친구는 이번 연휴 때 몇 달 만에 고향 집을 찾았는데 부친이 장남인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가벼운 치매가 있었는데 대면하지 못한 동안 더 나빠져 상경길 내내 먹먹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 대구의 요양병원에 있는 경우엔 시쳇말로 답이 없다. 일부 요양병원이 확진자와 사망자의 진앙이라는 섬뜩한 보도를 접하면서도 발을 구르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코로나19는 가장 취약한 대상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대표적인 희생자는 요양병원 환자들이다. 이들은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요양병원은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들이 모여 있는데다 요양과 간병, 치료 과정에서 밀접한 접촉이 불가피해 쉽게 감염된다. 외조모와 부모 모두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그곳에서 임종을 맞았기 때문에 나는 그 시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안다.

요양병원은 요양원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요양원은 돌봄이 목적이고 요양병원은 치료가 핵심이다. 따라서 요양과 재활에 특화된 의료진이 있어야 한다. 요양병원에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힘들거나 만성질환으로 회복이 쉽지 않은 노인들이 절대 다수다. 요양병원의 시설이나 여건이 점차 개선되고 있으나 그 이름에 걸맞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휴양하면서 조리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원래 의미의 ‘요양’과 ‘병원’으로서의 기능보다는 환자의 ‘죽음’을 대비하는 곳이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걸어 들어가 누워서 나오는 곳’쯤으로 폄훼되기도 한다.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말기 환자를 맡을 수 있는 큰 병원이나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병원 측은 보호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퇴원을 압박하는 데다 호스피스는 그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요양병원에서의 죽음은 예식장에서의 결혼처럼 일상이 되고 있다. 요양병원이 병원으로서 제 몫을 못한다면 차라리 존엄 있는 죽음을 맞는 곳으로서의 역할이라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다인실의 병상 커튼 하나에 가리워진 채 옆 환자들이 흘낏흘낏 보는 상태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게 하는 것은 잔인하다. 떠나는 자와 남은 가족은 물론 옆침대 환자 모두에게 죽음이 수치스러운 통과의례로 기억돼서는 안 된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요양병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다. 사태가 진정된 후 정부는 요양병원을 정밀하게 점검해봐야겠다. 환자의 삶과 죽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병원’이란 이름을 달게 해서는 안 된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코로나19는 이날마저 혈육 상봉을 막는다. 방역체계는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됐지만 요양병원의 어버이들은 ‘영상통화’와 ‘창문면회’로 그리움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3일 요양병원의 외부인 방문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남은 날이 길지 않은 부모에게 최고의 효자효녀는 출세한 아들도, 부자 딸도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아들딸이라고 한다. 몇 번 남지 않은 아들딸, 손자 손녀와의 대면마저 가로막는 질병을 우리는 너무 오래 맞닥뜨리고 있다.

정진영 종교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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