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여의춘추

[여의춘추] 고용보험, ‘전 국민’에 집착하지 말라

라동철 논설위원


당정청,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 일제히 공론화
사회안전망 확충은 가야 할 길이지만 곳곳에 암초 있어
특수고용직·예술인 등 사각지대 줄이는 데 주력하고
전면 확대는 사회적 공감대 속에 추진해야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됐다”고 운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일 “곧 들이닥칠 고용 충격에 대비해 하루빨리 제도의 성벽을 보수할 타임”이라고 호응했다. 민주당에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박광온 최고위원이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꼭 필요한 제도”라며 21대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로 제안했다.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도 6일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며 가세했다.

고용보험은 비자발적 사유로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보험이다. 실업급여는 실직 전 3개월간 평균임금의 60%를 최장 270일간 지급한다. 재원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다. 1995년 5월 시행된 고용보험은 진화를 거듭하며 고용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해 왔지만 사각지대가 많다. 경제활동인구가 지난 3월 현재 2778만명인데 고용보험 가입자는 1376만명(49.5%)에 불과하다. 정부가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보험·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시행하고 고용보험 가입을 조건으로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등 가입을 유도했는데도 이렇다.

상시근로자 1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는 가입이 의무지만 영세사업장은 사업주도, 노동자도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이 주15시간 미만인 단기노동자나 임시·일용직, 대리운전·택배·학습지·화물운송 등의 직종에서 일하는 특수고용직들도 대부분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영업자는 임의가입 대상이지만 가입률은 0.38%(약 1만5000명)다.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납부해야 하는 데다 소득 노출을 우려했기 때문일 테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가입 대상을 전체 취업자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다. 성사된다면 모든 취업자에게 실직과 관련된 안전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사회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가야 할 길이지만 그 길에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은 실업급여를 감당할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2조877억원 적자였다. 2018년(-8082억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다. 실업급여 등 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가입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 적자 폭은 더 늘 가능성이 높고 기금이 고갈될 수도 있다. 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탐은 나지만 철저한 검토와 준비 없이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미가입 자영업자나 저소득 노동자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당장 한푼이 아쉬운 처지인데 가입을 의무화하면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전 국민’에 방점을 두지 말고 사각지대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데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단계적으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준비를 갖추면서 갈 수밖에 없다”며 현 단계에서는 특수고용직과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국민취업지원제도 조기 도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저소득계층의 만 18~64세 구직자에게 월 5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최장 6개월 동안 지급하고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폐업 영세자영업자, 미취업 청년, 경력단절 여성 등 취업 취약계층을 겨냥한 제도로 일반재정으로 운영된다. 특수고용직과 예술인을 고용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시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국민취업지원제도 관련 법률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의욕만 앞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섣불리 추진했다가는 큰 사달이 날 수 있다. 사회갈등을 촉발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과욕을 버리고 특수고용직과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과 국민취업지원제도 조기 도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것만 성사돼도 고용안전망 확충에는 커다란 진전이다. 전 국민 확대는 노동계와 재계, 자영업자 등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가면서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추진해도 늦지 않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