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7) ‘수도생활’이냐 ‘사랑’이냐… 번민 갈수록 깊어져

“난 다섯 살 연상에 수녀다” 강조해도 연상연하 커플 줄줄이 대며 막무가내

최일도 목사가 전도사 시절 수녀였던 김연수 사모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최일도 전도사의 행동은 늘 내 예상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그가 처음으로 결혼하자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신분상 결혼할 수 없다는 사실과 내 나이를 밝혔다. 내가 수녀가 아니더라도 결혼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 전도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저보다 다섯 살 많으시군요. 오히려 제겐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세상의 연상연하 커플의 이름을 줄줄이 댔다. 그리고 이 말도 덧붙였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부인 캐더린이 수녀였다는 것도 아시죠. 하나님께서 맺어주시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 돼요.”

내 번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해 10년 세월을 살아온 수도생활도 중요했다. 더욱이 난 종신서원을 했다. 수녀원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내게 결혼을 하자는 청년은 개신교 전도사였다. 그럼에도 나는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내 머리는 수도생활을 주장했지만, 내 가슴은 그의 말에 기울어 가고 있었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선택은 고통이었다. 어느 한쪽이 현격히 차이가 있을 땐 비교적 고통이 적겠지만 양쪽이 동량의 가치로 팽팽하게 맞서니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수도원에 머물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의 순수한 사랑의 열정 때문에 (최 전도사가) 상처를 입겠지만 사랑의 상처는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사랑은 뿌리가 튼튼해서 한 싹이 잘리면 또 다른 싹을 틔우게 마련이다. 그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새싹을 틔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난 생각도 떨칠 겸 수원 ‘말씀의 집’으로 피정을 갔다.

수련 이틀째였다. 창세기 12장 1~5절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을 묵상하는 가운데 뜻밖의 음성을 들었다. ‘네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이미 고향을 떠나 수녀원에 들어왔잖아요?” 이어서 들려온 음성은 ‘이곳은 이미 너의 고향이 됐다’라는 말씀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난 이날 묵상 속에 들은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내 속마음인지 식별하기 위해 계성여중 교사직을 그만두고 몇 개월 동안 소임지를 떠나 기도에 전념했다. 한 달간 침묵하는 수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기간 최 전도사는 나를 찾기 위해 애를 쓰며 돌아다녔다. 침묵 수련이 끝났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날 찾아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최 전도사님을 사랑한다”며 “한 달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결론 내렸다”고 선을 그었다. 그가 떠나고 나 역시 말씀의 집을 떠나 충남 홍성 광천읍의 작은 성당으로 갔다.

최 전도사는 이번에도 나를 찾아왔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는 이유로 나는 다시 내 모교인 쌘뽈여고로 소임지를 옮겼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내 또 나를 찾아냈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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