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한국이 초기 혼란을 극복해 완화 단계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처 과정이 투명했기에 가능했다. 이 투명성의 성과는 국민, 의료진, 담당 공무원들의 합작품이다. 이만큼 저력을 보였으니 이제는 한국 정치 전체를 투명하게 만들 차례다. 정치 영역은 아직 곳곳이 장막에 가려 있다. 그런데도 장막 뒤를 감시할 파수꾼들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정치 투명성에 대한 국민의식은 여전히 미진하다. 장막 뒤편을 의심하고 추측하면 칭찬보다는 비난과 조롱을 받기 일쑤다.

물론 국회는 많이 투명해졌다. 의원의 의정활동은 조목조목 상세하게 공개된다. 국회 본회의는 말할 것도 없고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회의도 속기록으로 남기고 대부분을 공표한다. 의정지원기관인 국회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도 높은 투명성을 자랑한다. 필자는 수년 전 스웨덴 의회를 방문했을 때 상임위 회의실이 너무 좁고 의원들 외에는 회의에 들어올 수 없다는 점에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담당자는 의원 간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는 상임위 회의가 밖으로 공개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위원회 회의 내용을 즉각 공개하고 기자들도 수시로 출입이 가능한 한국의 경우를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정도면 한국 국회는 외국과 비교해도 투명성에서 뒤지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 청와대, 행정부처, 선거관리위원회 등 정치 과정상 뺄 수 없는 나머지 영역은 투명성과 거리가 멀다. 정치라고 하면 국회가 먼저 연상되지만 이 나머지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심대하다. 더 결정적인 때도 있다. 이처럼 중요한데도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내부는 거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정당은 국가기관이 아니나 헌법에 존립근거도 명시돼 있고 거액의 국가보조금을 받는다. 그럼에도 공천 과정은 사기업 직원 임용보다 불투명하다. 창당, 합당 등 근본적 사안에 관한 결정도 밀실에서 이뤄진다.

청와대와 행정부처는 집행기관이라 대의기관인 국회만큼 투명성을 최우선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하거나 세월호 사건의 교훈을 고려할 때 그 투명성 정도가 너무 낮다. 적폐청산 기치에 맞게 청와대와 행정부처의 장막이라는 적폐도 해소해야 한다. 선관위의 경우에도 그동안 세간의 관심 바깥이었지만 선거제도 개선, 선거구 획정, 공정선거 캠페인, 선거운동 감시, 선거비용 지원, 투개표 관리 등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핵심 사안이 늘어난 만큼 투명성이 중요해졌다.

장막에 가려진 곳이 많다는 점보다 거기를 들추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시민단체 등 파수꾼은 이미 상대적으로 투명한 국회를 지켜보는 쉬운 일에 몰두하고 정작 장막 뒤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쉬운 곳을 감시해야 성과를 올려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혹은 개인으로서 이름을 내고 잘하면 커리어 도약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국회를 감시하며 주가를 올린 덕에 국회의원이 되는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가 여럿 있다.

반면 투명하지 않은 기관을 감시하기란 훨씬 더 힘들고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유언비어만 퍼뜨리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비판과 조롱을 받게 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몇 주간 잠적해도 아무 정보가 나오지 않는 불투명성을 비판하기보다는 틀린 추측을 한 사람을 매도하는 본말전도의 사회분위기라면 정치권력과 관련해서도 장막 뒤를 감시하고 호루라기를 부는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호주 학자 존 킨은 ‘파수꾼 민주주의(monitory democracy)’라는 개념을 통해 20세기 중후반 이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정부권력이 각종 기제를 활용하는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 그룹, 개인들에 의해 감시당하며 제약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파수꾼 민주주의가 국회 쪽만의 이야기라면 곤란하다. 다른 민주주의 체제와 마찬가지로 정치 과정 전반에 걸쳐 권력 행사의 주체들이 고루 파수꾼의 감시하에 놓여야만 우리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파수꾼은 정치권력에 줄을 대거나 정치권 진입을 노리지 말고, 위험 부담에도 장막 뒤편을 밝히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또한 파수꾼의 이러한 용기와 노력을 응원해주는 국민의식이 함께 수반돼야 할 것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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