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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완·박인하의 만화는 시대다] 격랑의 시대… 독고탁, 휴머니즘의 마구를 던지다

(19) ‘독고탁’ 이상무

‘달려라 꼴찌’ 주인공 독고탁 캐릭터 컷. 필자 제공
바닥까지 넘어질 듯 몸을 꼬아 언더스로 투구를 해내고선 이내 중심을 잃고 넘어졌던 투수, 독고탁. 그는 그렇게 S자를 그리는 환상의 드라이브 볼을 만들고, 심지어는 바닥의 흙먼지를 일으켜 공이 사라지게 보이는 전설의 마구, 더스트볼을 스트라이크로 던져냈다.

그 시절 소년들은 그렇게 만화로 야구를 배웠다. 옛 만화방과 소년 잡지의 야구 이야기가 바로 어제 일처럼 추억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도전의 의미로 설명해주는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렵게 살아서 어렵다는 생각조차도 못하고 성장하던 시대, 조그마한 만화방에서 독고탁을 만났다. 주인공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함께 만화 보던 친구의 늦은 독서가 답답했던 시절이었다.

야구를 하려면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다. 야구를 하기 위한 마땅한 공간도 없었던 시절, 운동장에서는 축구만이 가능했다. 야구는 고교야구 스타들이 아이돌처럼 팬덤을 몰고 다니던 영웅들의 이야기였는데, 독고탁은 어려운 출발점에서도 어둠의 터널에서 꿋꿋이 도전하고 있었다. 그 지난한 독고탁의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금세 읽어내면서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와 가능성이 충분히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던 유년 시절은 지금의 든든한 자양분이 됐다. 이제, 한껏 성숙해진 그때의 소년들은 시대를 만화로 읽게 해준 이들로 작가 이상무와 독고탁을 회상한다.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난 만화가, 이상무. 우리는 이야기꾼이었던 그의 재기발랄함과 페이소스의 공감대를 그리워한다.

이상무 화백은 ‘독고탁’이라는 반항적 캐릭터를 통해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 좌절하던 젊은 청춘들을 위로했다. 그는 신파 클리셰를 벗어던진 휴머니즘적 만화로 줄기차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필자 제공
삐딱한 세상을 삐딱하게, 독고탁

1970년대, 이름도 낯선 독고탁이라는 캐릭터가 마운드에 선다. 산업화 기치 아래, 선진조국이라는 아지랑이 같은 명분 하나에 인권과 노동이 비민주적 정치로 무시되던 시절, 우리에겐 비상구가 필요했다. 이상무는 그런 탈출구를 소년들에게 열어준 선물 같은 작가였다. 작가 박기준으로부터 만화를 배우면서, 1966년 잡지 ‘여학생’의 ‘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한다. 이때부터 박노철이라는 본명보다 이상무라는 필명으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군대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용어인 ‘이상무’, 어쩌면, 그 이름은 정상적 상황이라는 신뢰의 군사용어지만, 실제로는 응답자의 감정적 복선을 함께 지닌 용어였다. 가장 익숙한 시대의 이름으로 그는 역설적이게도 도전적 희망을 이야기했다.

1971년 ‘주근깨’에서 독고탁은 처음 등장했다.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야구를 시작하는 캐릭터로 당시엔 생경한 반항아였다. 스스로 변장하고 얼굴을 바꾸어 야구에 뛰어든다는 스토리로, 삶의 도전을 야구만화에 대입한 시도였다. 당시 스포츠만화는 생소했다. 야구 중계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던 시대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고, 정치적 변동과 사회적 인식이 조금씩 깨어나던 긴박한 산업화의 시간이었다. 사람보다 기업이, 명분보다 성과가 모든 걸 설명하던 시대였다. 국가가 정한 목표와 비전이 정답이고, 개인의 삶이 그 목표를 위해 도구와 수단으로 활용되더라도 국가의 선진화를 위해 자신을 던져야 했던 시대였으며, 개인적 삶의 회한은 혼자의 고민으로 해결해야 했던 시대였다. 또 강요되는 진실 앞에 작아지던 개인을 묻고 살던 시대였다.

독고탁은 흔하지 않은 두 글자의 성과 두텁고 강한 한 글자의 ‘탁’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보이는 것은 야구였지만, 그것은 우리가 도전하는 삶의 전부였다. 삭발처럼 빡빡 밀어낸 까까머리는 세상에 순응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무언의 반항을 했다. 통제적 권력이 뭐라 하기에는 애매한 캐릭터였던 셈이다. 독고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삐딱함으로 젊음의 엔진에 마중물을 밀어 넣었다. 만화방에서 독고탁을 만난 독자들은 독고탁의 표정과 대사, 그리고 그가 말하는 감정에서 자신의 시대를 읽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세상과 맞결투를 하는 소소한 반항의 페이소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월트 디즈니가 1928년 단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시작으로 주인공 미키마우스를 등장시키고, 모든 시리즈에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던 전략으로 회사를 키워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시리즈를 ‘MM시리즈’라고 명명했다. 이상무에게는 독고탁 시리즈가 있었다. 그가 1970년대를 넘어서 80년대 유명작가로 등극했던 시절, 이상무를 동경하던 후배작가들은 모두 독고탁처럼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스토리의 동반자로 반복해서 시리즈화 했다. 구영탄 최강타 장독대 이강토 오혜성 그리고 독고탁 등 인기만화가들의 페르소나는 만화로 우리의 시대를 키워낸 숨겨진 자아의 소통창구였다.

‘아홉개의 빨간모자’ ‘우정의 마운드’ ‘노미호와 주리혜’ ‘비둘기 합창’(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필자 제공
휴머니즘과 희망의 이름

이상무의 작품들에는 가족은 많지만 실제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어려워 애타던 시절과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진 1인 가구가 느끼는 그리움까지가 두루 배어있다. 순정과 멜로로 대표되는 신파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세대와 성별의 보이지 않는 눈물을 끌어냈던 만화방과 잡지의 이야기꾼, 이상무는 70~80년대 독자들에게 그때 세상이 그래도 살만했었다고 찬찬히 설명한다. 당시에는 익숙했던 고아원을 배경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던 ‘아홉 개의 빨간모자’, 드라이브 볼과 더스트볼로 야구의 전설을 만화로 읽게 한 ‘달려라 꼴찌’, 가족의 따뜻함을 세대의 공감과 눈물로 보여준 ‘비둘기 합창’, 장편시리즈 제작이 불가능했던 시절, ‘한국인’을 타이틀로 한 열정의 시리즈 ‘독고탁은 한국인’, ‘독고탁은 투지의 한국인’ 등 이상무의 이야기는 늘 독자의 환호를 받았다.

이후 원작의 인기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기획제작도 모두 성공했는데, TV시리즈 ‘비둘기합창’, 극장용 장편 ‘내이름은 독고탁’, ‘태양을 향해 달려라’, ‘다시 찾는 마운드’ 등 만화원작에 기반을 둔 애니메이션들은 80년대 10대 소년들 방학극장 리스트에 단골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작품에 스며있는 인간적인 웃음과 따뜻한 감성은 선후배들을 이어주는 다리였고, 만화계와 다른 문화계를 아우르는 커다란 사랑방이었다. 90년대 이후 골프만화 ‘싱글로 가는 길’ ‘불타는 그린’ ‘운명의 라스트홀’ 등을 통해 당시로써는 신선한 시도를 했고, 대중문화 스타들과 추억의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와 디지털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 이상무는 2016년 1월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작업 도중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너무 많은 작품과 이야기를 먼저 해버려서 그렇게 빨리 가야 했던지, 한국만화 현대사에 그의 빈자리는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지금처럼 파편화된 가족과 상실된 휴머니즘의 시대에 이상무의 이야기는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외된 시선으로 본 주인공의 당찬 도전도 지금의 소년들에게 소소한 미래의 희망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테다.

그의 늘 새로웠던 유머와 페이소스가 보고 싶다. 독고탁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살아 있다. 독고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다시 10대로 돌아가는 장년의 소년들은 젊음의 소중함을 이야기에서 확인하고 싶어한다. 사회의 가능성은 소년의 도전이며, 그런 도전의 현실적 가능성이 사회의 건강함이라는 것을 독고탁에서 다시 발견한다. 작가 이상무가 우리 곁에서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새 세상을 향해 부활한 독고탁이 돼 마구를 던질 것이다. 휴머니즘이라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묵직한 마구를.

한창완 (세종대 융합예술대학원장·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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