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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칼럼] 항구적 재정 적자로 갈까 두렵다


코로나 위기 전 정책 실패로 이미 나라 살림 급속히 악화
제도 개혁·민간 수요 살리기 없이 모든 게 나랏돈 풀기로
재정 사용처가 규모만큼 중요
위기 끝나도 부담해야 하는 비가역적 지출 최소화해야

경제학 교과서에서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출항목은 기업의 투자다. 생산을 위한 기업의 지출인 투자가 일자리 창출과 성장의 원천이다. 각국 정부가 국내 기업의 투자를 독려할 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투자까지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이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의 성장방정식은 다르다. 성장 동력이 투자도, 소비도 아니다. 정부 재정지출이다.

물론 의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정부 간판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어그러지면서 어쩔 수 없이 된 측면이 있다. 문정부가 기대한 소득주도성장의 메커니즘은 임금 인상→소비지출 증가→기업이윤 증가→투자 증대→경제성장의 선순환이었다. 하지만 이 경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임금 인상→노동비용 상승→투자 위축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성장률 추락은 막아야 하니까 정부가 손쉽게 동원한 게 나랏돈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2.0% 중 75%인 1.5% 포인트를 정부 재정이 했다. ‘재정주도성장’이다. 하지만 재정주도성장이 의도된 게 아니라는 데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정부 국정철학의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문정부 국정목표의 하나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큰 정부’ 정도가 아니라 ‘초거대 정부’가 이 정부 핵심들의 신념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기업 수익 감소, 경기 추락으로 세수가 줄어드는데 나랏돈을 퍼부어대니 재정수지는 급속히 악화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곤경에 처한 문정부를 구했다. 국민은 그동안의 경제 실정을 망각했다. 재정만능주의의 폐해도 묻혔다. 코로나 사태 같은 극단적 불확실성 앞에 재정 확대는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 투입량만 늘린다고 위기가 극복되는 게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그만큼 중요하다. 재정수지에 경고등이 들어온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코로나 위기가 닥치기 전인 지난해 전체 나랏빚이 이미 1743조6000억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 공무원·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합친 금액이다. 1년 새 60조2000억원(3.6%)이나 늘었다. 지난 1년 동안 정부가 거둬들인 재정 수입과 지출의 차이인 통합재정수지도 12조원 적자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다. 1, 2, 3차(예상) 추경을 합치면 올해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5%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년도 안 돼 7% 포인트 급등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재정운용의 제1원칙은 비가역적(irreversible) 지출의 최소화다. 위기가 끝나도 바꿀 수 없고,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재정 지출을 피해야 한다. 코로나 피해 기업과 산업, 취약계층 지원 등 구제와 경제회복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단, 이 경우에도 지원 종료 기간을 명시하는 등으로 일시적 지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노인복지·의료비의 폭발적 증가는 이미 시작됐다. 올해는 연간 통계로도 인구가 줄어드는 첫 해가 될 것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 취임 후 지난 3년간 비가역적 복지 지출과 의료보장 범위가 크게 늘어났다. 재정 상태가 양호했던 선진국도 고령사회에 진입한 후 급속히 국가부채가 늘고 재정수지가 나빠진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단계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문 대통령의 전 국민 고용보험 공론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에도 힘이 부치는 재정 상황에서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갈수록 재정 투입이 늘어날 전 국민 고용보험을 공론화하는 게 적절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이 두고두고 파급될 복지제도를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일단 시작하자’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재정건전성과 국가 부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재정 보수론자들의 과도한 우려나 국정 발목잡기로 여겨선 안 된다. 객관적 여러 지표로도 한국의 재정수지는 이미 위험 구간에 들어섰다. 그동안 이 정부 핵심들이 보여 온 ‘세금 더 걷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식의 나랏돈 귀한 줄 모르는 태도도 이들의 우려에 힘을 실어준다.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제도 개혁과 규제 완화로 민간 투자와 소비를 살려보자는 얘기는 여권에서 실종됐다. 누구라도 걱정할 만한 상황 아닌가.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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