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8) ‘하나님! 그를 살려주세요, 그에게로 가겠습니다’

가사도로 가겠다는 마지막 전화통화에 살아만 있게 해달라 기도…마음 돌린 그와 통화 후 수녀원 떠날 준비

실연의 아픔에 모든 걸 던지려고 떠난 최일도 목사가 가사도에서 찍힌 사진. 가사도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인연을 맺은 이장이 최 목사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었다.

저녁 기도시간 15분 전 전화벨이 울렸다. 한 수녀가 받더니 말없이 날 바꿔줬다. 수화기 저편에서 웬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잠깐 사이에 남자 목소리로 바뀌었다. “저, 최일도입니다.” 자기 이름으로는 아무도 나를 바꿔주지 않자 학교 근처 제과점 주인아주머니를 통해 전화한 것이다.

일부러 냉정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곤 황급히 전화를 놓으려는데 귓등으로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녀님, 정말 이러시면 이 세상에서 다시는 제 목소리 못 듣게 될 겁니다. 이대로 가사도(加沙島)로 갈 테니까요.” 전화는 ‘탁’ 소리를 남기고 끊겼다.

기분이 석연찮았지만, 그렇게라도 단념하고 돌아섰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지 사방에 장애물뿐이에요. 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답니다. 내 사랑은 이제 자취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나 봅니다. 가사도 앞바다에 모든 추억을 던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이리저리 뜯어 맞춰봐도 그의 마지막 말이 섬에 틀어박혀 낙도 선교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날 밤 기도를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에 없다. 곧바로 수녀원에 있는 작은 성당으로 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울며불며 아무리 묻고 또 물어도 하나님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끝없이 탄식하며 기도하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턴가 마음에 하나의 결심이 자리 잡으며 점차 평정을 찾았다. 기도는 차분해졌고, 일관성 있게 오직 한 가지만을 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그를 살려주세요. 만일 그를 살려 보내시면 제가 이 삶에서 죽고, 그에게로 가겠습니다. 그것이 당신께서 저희를 통해 이루고 싶은 일에 협력하는 길이라 여기겠습니다.’ 근심과 걱정, 불안과 초조로 해일처럼 부풀고 뒤집히던 내 마음이 잔잔해졌다. 그리고 지난여름 수원 말씀의 집에서 받은 ‘네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1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기도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미치면 저절로 눈이 떠졌고, 길을 걷다가도 그만 다리에 기운이 쑥 빠지면서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 그저 애꿎은 전화기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그였다. 실제 가사도까지 갔던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마음을 돌려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목이 멨다. 그의 말을 들을 겨를도 없었다. “제가 서울로 갈게요. 그대로 기다리세요. 가서 말할게요.”

그와의 통화 후 난 수녀원을 떠날 준비를 했다. 종신서원을 풀어 달라고 교황청에 요청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녀원에서 얽히고설킨 관계의 뿌리가 잘리면서 이별의 출혈이 낭자했다. 그러나 용기를 냈다. 1981년 7월 24일 나는 수녀원의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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