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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다시 지하철에 오르며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들이미는 사람과 밀리지 않으려는 사람 간의 출퇴근 전쟁. 욕설과 분노를 머금은 전쟁터는 오늘도 계속된다. ‘지옥철’이라는 지하철 9호선의 현주소다. 악명 높은 이 차량에 몸을 실은 지 4년째다. 출퇴근 시 자가용을 놔두고 이 노선을 이용하는 이유는 신속성에 있다. 여의도역까지 16분여에 주파하는 급행열차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걷기 애플리케이션에 찍히는 걸음 수를 보는 것도 짭짤한 낙이다. 평소 부족한 운동량을 출퇴근하면서 빠른 걷기로 대신한다고나 할까. 보통 1만7000~1만9000보로 적지 않은 걸음 수가 나온다. 1년 전부터는 걸음 수에 비례해서 포인트까지 주는 실손 보험회사 앱도 깔았다. 걷기운동 목표 달성에 따라 쌓인 포인트를 활용해 보험료를 결제하거나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까지 구매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운동도 하고 포인트도 얻고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다.

그런데 2월부터 이 혜택(?)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주차장에 오랫동안 세워뒀던 차를 몰고 출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는 대중교통 체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분석 결과 지난 2, 3월 버스·지하철 승객의 출근시간 이용률은 23.02%, 퇴근시간 이용률은 26.42% 각각 감소했다. 특히 코로나 심각 단계가 발령된 2월 23일 이후 1주일간의 기록을 보면 이용객이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40.5%나 줄었다. 반면 3월 첫째 주 서울시 자동차 통행량은 지난 1월 대비 0.6% 증가했다. 승객들로 붐비는 대중교통 상황에 대한 감염 불안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한 6일. 재택근무를 하던 직장인들이 다시 출근길에 나섰고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시설도 속속 문을 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누구나 느꼈겠지만 그렇게 소중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을 찾아가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긴장감이 교차한 것도 사실이다.

불안 불안하면서도 시민들은 늘 이용했던 지하철로 버스로 다시 향했다. 나 또한 그랬다. 3개월 만에 돌아온 지하철은 여전히 승객들로 미어터졌다. 밀집한 군중이 뿜어내는 열기에 여전히 숨이 막혔고, 사람들로 빽빽이 둘러싸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고통 섞인 신음과 욕이 절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옥도 이런 지옥이 따로 없다지만 3개월 만에 맞은 일상은 코로나 이전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감염 위험에서 오로지 의지할 무기는 마스크뿐이었지만 모처럼 돌아온 일상은 행복을 준다. 다시 급격히 올라가는 앱 걸음 수를 볼 때마다 짜릿한 성취감마저 든다. 이런 게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시민들은 무더워진 날씨에 땀이 범벅이 되고 숨이 막힐 듯 갑갑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위해 더 나아가 각자가 방역 주체라는 사명감으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일각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느슨해졌다는 염려도 있지만 지하철 안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K방역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과 방역의 주체라는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초·중·고교 등교 개학도 1주일씩 미뤄졌다. 흥청댄 클럽에 등굣길이 또 막힌 것이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한다. 이렇듯 코로나는 방심과 망각의 틈으로 언제나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엄격한 자율성이 따른다는 점도 새삼 일깨워준다. 일부의 일탈은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일상 복귀를 염원하는 사회 구성원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다시 찾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더욱 그렇다. 내일도 지하철에 오르고 싶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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