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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알뜻 말뜻] 소유의 세계

최현주 카리라이터·사진작가


오늘은 영어 단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possession’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이 단어에 끌렸다. 무언가를 가짐, 즉 보유나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재산이나 부(富), 소유물’을 뜻하기도 하고 ‘소유권’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가 ‘ownership’ 같은 유사단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매력적인 깊이를 갖고 있다는 거였다. s라는 철자를 무려 4번이나 반복하며 꽤나 고집스럽고 강하게 발음되는 이 퍼제션에는 ‘홀리다, 뇌리에서 떠나지 않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소유라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내 손에 넣어 타인이 점유할 수 없도록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붙은 것처럼(실제 ‘빙의(憑依)’도 영어로 이 퍼제션을 쓴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홀리는 그 어떤 집착이나 열망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 열망 자체가 바로 소유다.

무언가를 간절히 갖고 싶다는 마음, 집에 돌아와서도 그걸 왜 손에 넣지 못했을까 아쉽고 후회하는 그 마음이 퍼제션이다. 누군가를 사랑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퍼제션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를 향해 “널 갖고 싶어. 넌 내 거야”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심연 속에서 올라와 아무리 억제하려고 해도 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입 밖으로 토해진 말이라면, 그때 상응되는 단어가 바로 퍼제션일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서로를 소유할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나를 홀림으로써 나의 소유를 자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황홀한가? 사랑에 빠진 자들은 그 어떤 무소유의 담론보다 이 소유 열망의 순수성을 믿고 싶어질 테니.

퍼제션이 드물게는 ‘침착, 자제’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은 의외였다. 소유라는 단어가 하필 침착과 자제에 맞닿아 있다니. 한편으로 의아했지만, 사전을 앞에 두고 앉아 단어를 노려보며 진지하게 생각해본 결과 소유와 자제는 결국 한 몸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백만장자인들 그 누가 아무런 자제 없이 무한소유를 할 수 있겠는가. 소유한 것은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제의 결과이니, 아, 소유는 자제와 한 단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관계로구나!

일찍이 법정스님은 우리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를 눈멀게 한다며 무소유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는 실제로 홀홀히 빈손으로 떠나갔다.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아니라도 소유의 반대말은 무소유가 아니라 얽매임이라는 걸 제대로 나이든 자들은 누구나 알게 된다. 남편도 아이도 직업도 집도 내 인생은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던 결혼생활이 결국은 홀림과 집착, 열망과 얽매임의 세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주는 교훈일까? 그런 부부의 세계를 굳이 본방사수해가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건, 꽃피는 오월 비혼세대가 느끼는 또 다른 얽매임일까?

최현주 카리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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