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9) 10년 넘는 수녀원 생활 정리… 신혼의 행복 시작

순탄치 않은 결혼, 결연한 의지로 감행… 좁고 낡은 단칸방 신혼집이지만 행복

1982년 9월 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김연수 사모와 최일도 목사가 기념 사진을 찍으며 미소 짓고 있다.

나는 매사가 낯설고 서툴렀다. 10년 넘는 수녀원 생활 동안 대중문화를 접한 일이 없었다. 누가 가수 조용필씨 얘기를 하기에 그가 시인이냐, 소설가냐 물었던 적도 있다. 내게 더욱 낯선 것은 개신교 예배와 신앙의 표현이었다. 되도록 홀로 기도하고 침묵 속에서 묵상하던 나는 선언하듯 크게 드러내는 신앙표현을 따라 하기 힘들었다.

최일도 전도사는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여러 교회들로 인도했다. 우리는 그중 서울 광화문의 새문안교회에 정착했다. 예배 분위기도 잘 맞았고 고 김동익 목사님의 설교도 큰 은혜로 다가왔다. 적응에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는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첫 데이트 때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다 그가 선물이라고 건넨 주부생활 잡지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전도사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두 개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5~7년 후에 목사가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학력고사를 보고 장로회신학대에 들어가는 건데 목사가 되려면 9~10년은 걸려요.”

나는 무엇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의 선택이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두 번째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찬성했다. 머릿속으로 앞날을 그려봤다. 10년 동안 학생과 살아갈 일이 막막했지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계성여중 교사로 있을 때 다른 교사들을 보니 혼자 벌어 애 셋도 키우고 하더라. 내가 벌면 되지’하는 생각이었다.

그날 나는 수녀 시절 품어왔던 ‘모든 이의 모든 것’이란 모토 대신 ‘오직 당신의 행복을 위해’를 내 생의 캐치프레이즈로 선택했다. 최 전도사는 한 번에 장로회신학대에 합격했다. 얼마 후 나도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취직했다. 얼마 뒤인 1982년 9월 4일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이 쉽지는 않았다. 시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목사나 장로의 딸을 배우자로 맞길 원했다. 수녀 출신에 나이도 다섯 살이나 많은 나와의 결혼은 용납이 안 된다고 하셨다. 내가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수녀원에 들어갔던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결연한 의지로 우리는 결혼을 감행했다.

혼수도, 많은 사람의 축복과 격려라는 장식도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이 결혼의 모든 것이 됐다. 신혼집은 며칠을 찾아 헤맨 끝에 서울 월계동의 낡은 문간방 하나를 전세 150만원에 빌렸다. 화장실도 없는 아주 좁은 방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대의 선물이고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때의 마음을 담아 썼던 시 ‘그대 약속 별빛 되어’ 중 일부를 소개한다.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 손잡고 가는/이 길/ 안내장도 지도도 없이/ 고향 떠나 찾아나선/ 낯선 길도/ 그대의 약속 별빛 되어/ 달빛 숨은 어둠조차 길을 엽니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