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최전선서 86일째 사투… 거점병원 지정은 하나님 계획”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전하는 인술의 기록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들이 최근 병원 내 치료실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채 컴퓨터를 보며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대구동산병원 제공
지난 2월 20일 저녁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서영성 원장) 경영진이 긴급히 한자리에 모였다.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0명을 돌파한 날이었다. 이날 첫 사망자도 나왔다. 이틀 전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신도로 알려진 31번째 확진자가 나오며 대구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대구시에서 대구동산병원에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병원 경영진은 순간 고민했다. 민간 병원으로서 당시 137병상을 운영 중이었는데, 하루 만에 이를 전부 비우고 통째로 병실을 내어줘야 했다. 기존 환자들에겐 큰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병원 경영진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병원의 정체성이었다. 대구동산병원의 전신은 1899년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대구 제중원(濟衆院)이었다. 선교사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병원은 121년간 대구 시민들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왔다. 멀고 먼 여정을 거쳐 한국까지 찾아온 서양 의료진들은 의료 환경이 척박했던 이곳에서 사랑의 의술을 펼쳤다.


이튿날인 21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우리가 함께합시다’라는 경영진 결정에 직원들도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다. 병원은 곧바로 대구시로부터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됐다. 22일부터는 코로나19 확진 환자만 받기 시작했다. 매일 환자 수가 급증하더니 불과 6일 만에 입원 환자가 232명을 기록했다. 긴박했던 일주일이었다. 수많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했다. 지금은 중환자 3명을 포함, 160여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남성일(대구중앙교회 안수집사) 계명대 의대 교수가 최근 국민일보에 전한 대구동산병원 이야기다. 병원은 지난 3개월간 코로나19 치료의 최전선에서 싸워왔다. 병원 기획실장인 남 교수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지역거점병원 지정 당시를 회상했다. 남 교수는 “대구동산병원은 앞서 결핵이나 콜레라가 창궐할 때마다 이를 전담해 막아 온 역사가 있다”면서 “병원의 이번 결정도 예전 선교사님들의 병원 설립 취지에 맞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구동산병원 내 크리스천 의료진은 매일 아침 모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대표기도 순번을 정해 함께 기도하며 마음을 모은다. 주일에는 회의 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온라인 예배를 먼저 드린다. 남 교수는 “의료진은 한결같다. 늘 환자가 빨리 회복돼 가족들과 일상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교수(오른쪽 여섯 번째)가 지난달 29일 대구동산병원 의료진과의 협진을 마친 뒤 서영성 병원장(다섯 번째), 남성일 기획실장(맨 오른쪽) 등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글로벌케어 제공
기독 의료진으로 구성된 국제개발·보건의료 비정부기구 글로벌케어(상임대표 백은성)도 대구동산병원을 지원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와 협력해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6차례 중환자 전문의 32명을 파견했다. 글로벌케어 실행위원인 이승헌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보름간 개인 휴가를 내면서까지 대구에서 환자 치료를 도왔다.

이 교수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과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70대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무사히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지만, 그의 아들은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아들을 잃은 슬픔 가운데에서도 할머니는 담당 의료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모태신앙인 남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혼자 감당하는 일은 작고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함께하면 사역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21년 전 선교사님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대구동산병원이 거점병원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다고 확신한다”면서 “많은 선교사님과 선배 의료진들의 눈물과 기도가 뿌려진 이곳에서 대구 시민들을 치료하고 섬기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음에 의료진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동산병원 전경. 대구동산병원 제공
병원 밖 세상은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방역단계가 점차 완화되며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의료 현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남 교수는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여전히 힘겹게 하루하루 확진자들과 함께하는 의료진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한국교회의 지원과 성도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생활 속 거리 두기는 계속 실천하되 하나님과의 거리는 더 좁혀가는 은혜가 있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그가 깨달은 게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제 좀 멈추라는 신호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멈추고, 가정을 돌보고 자연을 돌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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