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살구라는 뜻의 은행나무는 암수 구별이 확실하다. 고생대에 출현한 뒤 동식물 대부분이 멸종한 빙하기를 거치고도 생존해 ‘살아있는 화석’이라 일컬어진다. 유달리 병충해에 강해 가로수로 많이 심어지다 보니 주변에서 흔하게 눈에 띄지만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미국에선 내 나라만큼 은행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얼마 전 늦봄의 은행나무와 조우를 했다. 연둣빛을 넘어 진한 초록으로 색깔 변화가 막 진행되려는 순간이었는데, 어린 꼬마인 줄 알았던 아들이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어 남자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상황과 비슷했다. 바로 저것이 젊음이고, 청춘인 거야. 비록 냄새와 색깔로는 아직 존재감이 약하지만 간밤에 내린 빗줄기로 물기를 하나 가득 품고 하늘을 향해 빛나는 모습이 그냥 싱그럽고 좋았다.

그런데 우리는 은행나무 빛깔마저도 주관적 잣대로 평가한다. 노란 은행잎과 은행이 열릴 때에야 비로소 은행나무 존재가치를 알아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무명의 푸르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자유분방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좀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지 못함이 아쉬웠다.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받는 아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로 여전히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가을이면 은행나무는 예외 없이 노랗게 변하고 암그루는 구린내 진동하는 열매를 거리에 마구 쏟아낼 것이다. 대추가 붉게 익기 위해 그 안에 천둥과 벼락을 수없이 품었던 것처럼 이 수목 역시 감내해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전히 믿고 응원해주자.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경험자로서 한마디 거든다면, 영원할 것 같은 청춘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하라고 말하련다.

황훈정 재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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