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차젠씨는 몇 주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국 뉴저지의 한 노인요양원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고모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차젠씨는 ‘고모와 이렇게 작별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고모 실비아 골드숄의 나이는 108세였다. 이달 중순 차젠씨는 요양원으로부터 또 전화를 받았다. 고모가 100% 완치됐다는 소식이었다.

골드숄 할머니는 코로나19 완치자 가운데 세계 최고령급 중 한 명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이 소식이 전해질 즈음 경북 포항에서도 비슷한 낭보가 이어졌다. 올해 104세인 최상분 할머니가 국내 최고령 코로나19 완치자로 판정받고 두 달여 만에 퇴원한 것이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의료진에 대한 감사와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같은 덕담이 많았다.

이런 뉴스에 내심 안도하는 이들 중엔 아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을 것 같다. 미국 뉴저지의 경우,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70대 이상 고령층이다. 환자이거나 기저질환자가 대부분이지만, 고령자들로선 ‘걸리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군으로 꼽히는 고령층은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확산으로 성큼 다가온 ‘언택트(비대면) 문화’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고 ‘엔데믹’(endemic·주기적 발병)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은 언택트 사회로의 빠른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재택근무, 원격 교육·의료·상담 등 비대면 활동의 일상화는 고령층에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언택트의 핵심은 정보기술(IT)의 혁신이다.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젊은층은 ‘물 만난 고기’ 같겠지만 고령층은 움츠러들기 쉽다. 신기술·신문화에 대한 습득과 수용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언택트 영업에 나섰고 상품 출시에 뛰어들었는데, 고령층은 주요 타깃층에서 비켜 서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경향이 고착화될 경우다. 고령층에 대한 홀대 내지 배제는 자칫 기업 경영의 패착으로 귀결될 수 있다. 100세 넘는 할머니들의 코로나19 완치 소식이 전해진 날, 미국의 JC페니백화점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는 뉴스도 함께 전해졌다. JC페니는 올해 118년 역사를 지닌 미국 최초의 체인형 백화점이다. 850개에 달하는 매장과 8만50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JC페니의 운명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비관적이었다.

잘나가던 JC페니가 변화를 시도한 건 20년 전이었다. 밀레니얼 광풍이 한창 불던 때였다. 회사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젊은층이 선호하는 브랜드와 제휴를 늘렸다. 매장도 젊은층 취향에 맞게 바꿨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5년 후 매출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분석 결과, JC페니만의 오랜 충성 고객이었던 당시 중년의 중산층 주부를 놓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어느덧 60~80대 고령층이 된 그들은 JC페니를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JC페니의 공급망 담당 부사장 마이크 로빈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잃고 있었다. 핵심 고객에게서 멀어졌다”고 고백했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포스트 코로나 전략의 대세는 언택트와 접목한 IT 혁신으로 모아진다. 피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가 안착하는데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시에 오래된 충성 고객을 놓치는 일이 없는지도 꼼꼼히 살펴볼 때다.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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