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나라의 빈 곳간을 자신의 금으로 채우고 있었다. 신혼부부는 결혼반지를, 젊은 부부는 아이의 돌반지를, 운동선수들은 금메달을 내놓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 취임 때 받은 십자가를 쾌척했다. 주위에서 아까워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몸을 버리셨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김대중 자서전)

1997년 외환위기 때 일어난 ‘금 모으기운동’이 최근 소환됐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함께 나온 ‘자발적 기부’에 대해 여당 인사는 “제2의 금 모으기운동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기부안은 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가구 70%에 주느냐, 전 가구에 주느냐라는 정부·여당 간 논란 끝에 나왔다. 전 가구에 주되 재정 부족을 국민의 기부로 채우자는 것이다. 역시나(?) 대통령이 기부를 선언했고 청와대, 여당, 공무원, 5대 그룹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많이 봐 온 풍경이다.

재난지원금은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소상공인을 위해 쓰자는 돈이다. 그런데 동시에 이 돈을 토해내는 범국민운동을 펼치자고 한다. 상호 모순이다. 더욱이 기부가 애국심을 가늠하는 잣대처럼 비치면서 거부감도 적지 않다.

결국 재난지원금의 온라인 신청 첫날(지난 11일)부터 사달이 났다. 신청 과정에서 ‘실수 기부’가 잇따르며 환불 요구가 속출했다. 카드사 홈페이지 한 화면에 재난지원금 신청란과 기부금액란이 나란히 배치되자 ‘신청 동의’와 ‘전액 기부’를 무심코 동시에 클릭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정부가 교묘히 기부를 유도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1997년 11월 새마을부녀회에서 ‘애국 가락지 모으기운동’을 선포하며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금 모으기운동’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천양지차다.

원칙으로 끌고 가야 할 국가의 재정 정책을 정치 논리와 꼼수로 해결하려다 삐끗한 사례다. 문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이런 우려를 자아낼 사안이 적지 않다는 점에 있다.

원격의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다 현 여당이 반대해 무산된 정책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속에서 원격의료의 유용성을 접한 정부 입장이 최근 바뀌었다. 우군인 시민단체가 의료 영리화라며 강력히 반대하자 정부는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를 내세웠다.

정부·여당에 따르면 비대면 의료는 환자와 의사가 얼굴을 맞대지 않는 진료이고, 원격의료는 통신망이 연결된 모니터 등 정보기술(IT) 의료 장비를 통한 진료 서비스다. 비대면 의료의 토대 위에 원격의료가 활성화되는 건데 마치 둘이 별개인양 말한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코로나 대변혁기에 걸맞은 혁신적 서비스라면 당당히 공론화한 뒤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밟는 게 정도다. 내 편의 반대가 두렵다고 명칭만 살짝 바꿔 눈속임으로 추진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코로나발 제조업 자국주의에 따른 ‘리쇼어링’(해외 기업의 본국 회귀)은 문재인 대통령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관건은 돌아올 기업에 대한 파격적 대우가 필요한데 과연 현 정부가 용인할 수 있느냐다. 정부의 반기업 성향 때문에 나오는 우려다. 부처, 당정, 노사 간 대립도 예상된다. 담대한 결단 없이 눈치보기 급급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금 모으기운동을 지켜본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저런 국민이 있는 나라는 도와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23년 후 코로나 사태를 인내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극복해가는 국민이라면 “저런 국민이 있는 나라는 비상할 자격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을까. 정부만 잘하면 된다. 편가르기와 진영 논리는 접어두고 혁신적 국가 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꼼수가 아닌 정도를 걷는다면 국민들은 아낌없이 지지한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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