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1) 남편 수상한 씀씀이에… “혹시 숨겨놓은 식구 생겼어?”

고부갈등에 양쪽 달래다 지친 남편… 밖으로 돌며 지출 늘어 외도 의심

시어머니 현순옥 여사의 팔순 때 찍은 사진. 결혼 초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던 시어머니는 지금은 누구보다 며느리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는 든든한 우군이 됐다.

아무리 노력하고 잘 모시려 해도 시어머니 눈에 나는 시원치 않은 며느리였다. 목사 딸도, 장로 딸도 아닌, 수녀 출신 며느리가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사사건건 나를 못마땅해 했다. 두 손주를 돌보다 힘이 들어 짜증을 내는 것도 나에 대한 구박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와 다시 따로 살 순 없었다. 아이 돌봄 문제도 있지만, 가람이가 생겨 집을 이사하면서 시어머니 돈을 많이 빌렸던 터라 곧바로 두 집으로 나눠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그 시절 나를 봤던 친정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울었다. 얼굴에 생기가 하나도 없이 너무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친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너는 사막에서 나와 진흙밭에 빠졌구나”라며 안쓰러워했다.

시어머니와 나의 불화로 더 힘든 사람은 남편이었다. 이쪽저쪽 달래다 지친 남편은 아예 밖으로 빙빙 돌았다. 시집살이에 남편의 무관심까지 점입가경이 따로 없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찻집이나 다른 곳에서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돌아와서도 무슨 일인지 일언반구 설명이 없었다.

그 무렵 남편이 ‘식대’라고 적고 가져가는 돈이 너무 많았다. 당시 우리는 조금 기이한 지출 방법을 쓰고 있었다. 일정액의 돈을 경대 서랍에 넣어두고 꼭 필요한 만큼 각자 꺼내 쓰는 방식이었다. 내가 벌어오는 돈을 쓰는 게 행여 남편에게 부담될까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다만 1만원이 넘는 돈은 용도를 기록해두기로 했다.

한동안 참다가 남편에게 조용히 물었다. “당신 식대가 왜 갑자기 그렇게 늘었어요. 어디 숨겨놓은 식구라도 생겼어요.” 그래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기껏 꺼내는 말이 직무상 만남이라느니 상담이라느니 군색스러운 변명 정도였다. 이쯤 되자 나는 밤늦도록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오는 일과 돈이 없어지는 일을 연결 지어 추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틀림없어. 어떤 여자를 만나는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참을 수 없었다. 그날부터 그의 수첩을 몰래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첩에 여자 이름도 몇 나오고, 만난 장소도 나와 있었다. 주로 찻집 이름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수첩에 나와 있는 찻집 이름을 찾아 헤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편은 당시 상담을 청해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다양했는데 젊은 자매도 있었다. 남편이 상담한 내용 중에는 목회자에 대한 신뢰를 갖고 털어놓은 개인적 비밀도 있어서 설령 아내라 해도 말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는 난 그날 밤 남편에게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했다. 오히려 남편은 자기를 의심한다며 버럭 화를 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기가 막혔다. 순간 난 결심했다. 집을 나가자. 시어머니 일만 해도 감당하기 힘든데, 남편이란 사람이 날 위로하기는커녕 딴 맘 먹고 밖으로 나돌다니. 아무리 기도하며 이겨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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