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사 기자와 서울 광화문 부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자는 ㄱ카페를 약속 장소로 정해 알려주면서 그 카페가 동아일보사 건너편에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그 일대를 꽤 잘 알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지도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동아일보사 건물 주변에는 길이 많아서 ‘건너편’도 여럿이다. 청계천과 세종대로와 종로가 이 건물의 앞과 뒤, 옆에 있다. 건너편이 셋이나 되는 셈이다. 건물의 정면이 청계천을 향해 있고 또 그 건너에 커피집이 많기 때문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방향을 그쪽으로 잡고 청계천을 건넜다. 길가에는 커피집이 여럿 있었지만 ㄱ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프레스센터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다른 건너편을 찾아야 했다.

세종대로를 사이에 둔 건너편은 동화면세백화점이 있고 광역버스들이 서는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대충 살펴보아도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남은 한 곳은 종로를 사이에 둔 건너편인데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보빌딩 외에도 르메이에르 빌딩을 비롯해서 최근에 멀끔한 빌딩이 많이 들어섰다. 나는 교보빌딩을 자주 가는 편인데 그곳에 그런 이름의 카페는 없다. 그렇다면 그 옆에 새로 생긴 여러 건물 가운데 한 곳일 텐데, 거기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하도 많아서 무작정 뒤지고 다니는 게 곤란할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휴대폰 지도를 열었다.

지도는 뜻밖에도 ㄱ카페가 세종문화회관 가까운 곳에 있다고 알려줬다. 교보빌딩 건너편이었고 동아일보사를 기준으로 하면 대각선 쪽이었다. 나는 교보빌딩 앞에서 지하도를 건너면서 그 신문기자가 왜 그곳을 동아일보사 건너편이라고 설명했을까, 생각했다. 내 위치 감각에 의하면 그곳은 교보문고 건너편이거나 세종문화회관 옆이었다. 내가 그 카페를 설명한다면 아마 교보문고 건너편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동아일보사 건너편이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 것처럼,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사람들이 사물과 사안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식이 이렇게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졌다. 그곳이 어디인지 말할 때 무심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는 것도. 내가 광화문 주변의 어떤 장소에 대해 거의 항상 교보문고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의 항상 교보빌딩을 교보문고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가 만난 그 기자는 거의 항상 동아일보사 건물을 기준으로 그 부근 장소를 설명할 것이다.

미장원과 피시방과 당구장이 함께 있는 건물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사람은 미장원 건물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피시방 건물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당구장 건물이라고 한다. 같은 건물이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호명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그 건물에 대해 알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린다. 무엇에 관심이 많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정보를 제공한다.

말한 내용보다 말한 사람의 정체가 더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도 흔하다. 가령 누군가 특정인을 혐오스러운 표현으로 비난할 때 그 혐오스러운 표현으로 불린 사람은 잊히지만 그 표현을 쓴 사람의 혐오스러움은 잊히지 않는다. 막말을 한 사람의 막말은 시간이 가면 희미해지지만 그 사람이 막말을 한 사람이라는 정보는 여간해서는 희미해지지 않는다.

말실수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숨겨둔 속마음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프로이드는 말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2기 취임 파티 때 조 바이든 부통령은 “제가 미국 대통령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실수를 해서 구설에 올랐다. 무의식중에 한 말이 더 본심에 가까울 수 있다. 나는 잠꼬대로 최근에 다시 만난 옛 애인의 이름을 불렀다가 아내로부터 곤욕을 치른 사람을 알고 있다.

무슨 말이든, 자기가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은 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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