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미국인 전문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코로나19 대처 국가에서 왜 하필이면 코로나19 대처 최후진국으로 왔느냐”며 ‘농반진반’의 말을 건넸다. 미국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처는 모범사례를 넘어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대처가 안이했다는 비판에 갇혀 있다. 그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던 지난 2월 26일 “미국은 코로나19 위협에 준비돼 있다”면서 “미국 내 확산이 매우 작은 규모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지금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그는 잘못을 인정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돼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나는 말만 했는데, 빌 클린턴은 행동으로 옮겼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인 전직 대통령의 성추문 스캔들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처 비판에 맞서서도 방어 논리를 개발했다. “한국보다 인구 1인당 검사를 더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이 말을 한다. 보스가 그렇다 보니, 백악관의 ‘한국 집착’도 유별나다. 백악관 브리핑에는 한국과 미국 50주의 인구 1인당 코로나19 검사 수를 비교한 막대 그래프까지 등장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언론들은 한국을 검사의 ‘황금 기준’으로 인용했지만 이 나라의 모든 주에서 한국보다 높은 비율로 검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강대국 미국이 한국의 코로나19 대처를 극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때는 지난 것 같다.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냉철한 대비가 필요하다. 미국 언론들이 ‘한국 모델’을 인용하면서 ‘트럼프 때리기’에 나선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심 불쾌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워싱턴에서 나돌고 있다. 기분이 상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괜한 ‘트집 잡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그토록 칭찬하는 한국을 꼼짝도 못 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칼날을 꺼내 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독히도 싫어하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CNN방송 등이 한국을 호평한 것이 그를 자극하는 역효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최악인 상황도 이런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실업급여를 신청한 미국인이 3600만명을 넘어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적 타격을 입은 미국인들과 기업들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 있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의 일부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메꾸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한국 극찬’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한국 때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중국 공격’에만 혈안이 돼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깃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그 리스트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무역제재법들을 포함해 강력한 수단들을 동원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철강·자동차·전자 등 거의 모든 산업이 미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지연되는 것도 불길한 신호다.

코로나19를 잡기 위해 재확산 사태를 막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 리스크’도 코로나19 국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험요소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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