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반, 걱정 반 끝에 4개월
보름 만의 가족상봉이 작지만 넉넉한 행복감 안겨줘
바이러스가 일깨운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코로나 이후에도 지향하는 가치는 동일


소백산맥을 넘어서자 산이 확연히 검어졌다. 북쪽은 아직 연둣빛 신록이 남아 있는데 남쪽은 벌써 여름 분위기가 풍긴다. 숲 군데군데 핀 아카시아꽃이 더 희어 보인다. 예전 그대로다. 산에 둘러싸인 논에는 모내기를 마친 어린 벼들이 물 위에 찰랑거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손이 부족하다더니, 부지런한 농심은 그래도 차마 농사 일정을 늦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16일 서울을 출발할 때는 기대 반, 걱정도 반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휩쓴 대구의 30평 아파트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의 칩거 생활을 3개월 가까이 하신 부모님 얼굴을 대하는 기쁨이 길을 재촉했다. 다른 편에선 클럽발 감염증 확산으로 서울의 자손들이 80대 부모님께 해나 끼치는 게 아닐까 두려움도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고향행을 극구 말리시던 건 부모님이셨다. 어떻게 혈육 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까 고민도 됐다.

서울-대구 중간지점인 경북 문경에서 만난 부모님과 두 동생네 가족들은 건강했다. 동생네들과는 손등 인사를 나눴지만 두 손을 활짝 벌려 반기는 아버지 어머니는 얼싸안지 않을 수 없었다. 양력설을 쇠느라 만난 뒤 4개월 보름 만의 상봉이었다.

아버지는 손등의 건선이 조금 심해졌지만, 기력은 여전했다. 코로나 탓에 정기적인 병원 치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은 안색이 밝았지만 오르막 걷기를 힘들어했다. 오래 집 안에서만 생활하느라 근육이 약해진 때문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천만다행이다.

문경 영강 곁 솔밭에 옹기종기 모여 자리를 폈다. 2년 전 가족 여름휴가를 왔던 펜션이 건너다보이는 곳이다. 행락객들에게 임대하는 평상이 10여개 되는데 우리 외엔 한 가족만 보인다. 좋은 봄날이 다 지나가는데 사람이 거쳐 간 흔적 없이 흙과 나무 부스러기가 평상에 가득하다. 돗자리를 깔아도 돈을 받으러 오는 이가 없다. 임자 없는 관리사무소 어귀엔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화통화는 가끔 했지만 대면하는 것은 다르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간단한 음식이라도 나눌 수 있는 게 행복이다. 코로나19 발발 전 휴가 때처럼 피라미 낚싯대를 강에 던졌다. 얘기꽃은 코로나 사태를 지낸 경험, 최근의 확산세 걱정에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이어졌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피했다는 여동생네는 이제 살벌한 풍경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예봉이 꺾이면서 포스트 코로나 얘기가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원격 사회로의 전환, 바이오 시장의 새로운 기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스마트화 가속, 위험대응 일상화 등 네 가지 환경변화를 예상했다. 5년 내 현실화가 가능하면서 파급효과가 큰 25개 유망기술 목록을 제시했다. 사회적 관계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모진 바이러스 사태에서 얻은 경험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그에 맞춘 산업이 탄생하리라는 예견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잃었던 것들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다. 가족 및 지인과의 대면, 사회적 거리 복원, 가족 가치와 공동체 정신의 회복 등이다. 소소한 행복이어서 자주 잊고 살지만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채 우리를 인간이게끔 이끄는 것들이다. 바이러스의 도전에 대한 응전 과정에서 얻은 포스트 코로나 혜안도 필요하지만 프리 코로나(pre-corona)의 회복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코로나가 확산되던 당시 서로 다른 병원에 격리되는 바람에 남편 임종도 못 한 아내의 얘기는 국민을 울렸다. 감염 우려 때문에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러 가슴에 한이 맺힌 가족들이 줄을 이었다. 바이러스 앞에 혈육의 도리마저 다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일상적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했다. 같이 식사하고 생활하며, 지인들 모임에 참석해 수다를 떠는 온갖 작은 사회적 일상의 가치를 깊이 깨달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기고문에서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교육이 가동됐지만, 공동체 생활을 통해 전인적 성장을 하게 만드는 학교 교육의 본질적 역할도 인식하게 됐다고 썼다. 코로나 이후 시대의 기술발전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결국 코로나 이전의 가치들이다. 이제 다시 최소 2주간은 만남을 줄이고, 동선을 간략화해야 한다. 그래도 반나절의 상봉은 행복감을 넉넉히 안겨줬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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