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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무대 위 여자들

박민지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그날 무대에 배우 딱 2명만 올랐다. 별다를 것 없는 2인극이 아니었다. 지난달 막 내린 뮤지컬 ‘데미안’의 두 캐릭터는 성별도, 고정 배우도 없었다. 싱클레어 역을 어떤 날은 여배우가, 다른 날은 남배우가 연기했고 이들 모두 어떤 날에는 데미안이 됐다.

젠더 프리 캐스팅을 정의하면 이렇다. ‘기획 단계부터 배역에 젠더를 정해놓지 않거나 성별이 고정된 역할이더라도 이를 연기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캐스팅하는 것’. 뮤지컬 ‘데미안’은 이 개념을 온전히 실천한 셈이지만 유독 특이하다고 여겨진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의 젠더 프리는 남성이 독식했던 캐릭터를 여성이 대신 연기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연극 ‘오펀스’가 대표적이다. 몇 해 동안 남배우 3인이 출연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여배우 3인이 무대에 올랐다. 한계는 분명했다. 총을 쏘고, 몸싸움을 벌이고, 상스러운 욕을 하는 전통적 ‘남성성’이 흠뻑 묻어 있는 캐릭터를 맡은 여배우들은 그저 남자 흉내를 냈다.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남자처럼 행동하며 목소리를 굵게 내는 것으로는 젠더 프리의 의도를 전달할 수는 없다. 관객은 여배우가 왜 온전히 여자로서 존재하지 못하냐고 물었다.

그런 측면에서 뮤지컬 ‘데미안’은 철저히 젠더 프리였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젠더 프리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언어를 쓰기로 했다. 젠더 개념을 아예 없앤 데다 한 캐릭터를 여러 명이 연기했으니 ‘캐릭터 프리 캐스팅’으로 정의했다. 최근 만난 뮤지컬 ‘데미안’ 극작가 오세혁은 자신의 메시지가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그저 인간의 입으로 전해지길 바랐다고 했다. 반드시 캐릭터 프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본 첫 장에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배우가 양쪽을 다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는 뮤지컬 ‘데미안’을 만들면서 ‘개인’을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세상’을 바라봤지만 그걸 구성하는 게 결국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심리학 박사 카를 구스타프 융이 들어있듯 그의 글에도 융이 묻어난다. 융은 헤세에게 한 개의 자아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는 여기서 멈칫했다. 실은 싱클레어와 데미안도 아니마(남성 속 여성성)이거나 아니무스(여성 속 남성성) 아닐까? 이 질문에서 캐릭터 프리가 시작됐다.

젠더를 지우니 주제는 오히려 선명해졌다. 꼭 남성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새삼 알았다. 지금까지 무대의 중심은 남성 몫이었다. 여성은 의존적인 민폐 캐릭터를 맡았다. 얼마 전 만난 한 배우는 “좋은 여배우는 많은데 설 무대가 없다”며 “언제나 여배우는 남배우의 들러리였다”고 토로했다.

여배우의 영역 확장은 젠더 프리에서 시작할 수 있고 외국은 이미 꽤 진행됐다. 1982년 왕자 ‘햄릿’ 역을 여배우 다이안 베로나가 맡았을 때, 캐스팅한 조지프 파프에게 의도를 묻는 말이 쏟아졌다. 그는 “배우가 연기하는데 대체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고 받아쳤다.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여성성’을 지웠다. 영국 런던 돈마 웨어하우스의 ‘줄리어스 시저’에 여배우만 출연했는데 평론가들은 “대사와 몸짓, 분위기에서 ‘여성적 연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은 2018년부터 남성과 여성을 똑같은 비율로 캐스팅하고 있다.

한국 공연의 젠더 프리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남성을 흉내 내는 여성을 앞세워 여배우도 남배우만큼 하지 않느냐고 외치는 건 어쩐지 자존심 상한다. 지금 여성들의 투쟁은 남성들만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여성주의는 남성과 같아지는 것(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은 독보적일 수 있다. 남성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하려면 세심하게 각색하는 성의를 보이거나, 젠더 개념을 완벽히 지우고 캐릭터를 재설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한 여배우는 말했다. “남배우만 나오는 공연은 누구도 특이하다고 여기지 않아요. 하지만 여성만 나온다고 하니 다들 신기하대요. 여배우의 자리가 그만큼 좁았다는 거죠.” 내일 공연에도, 그다음 공연에도 커튼 뒤에 여배우가 서 있으면 좋겠다.

박민지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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