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4) 남편 “당신은 선녀”… 실제는 늘 ‘나무꾼’ 역할

남편 대신 육아·직장일 병행하며 생계 책임지는데 남편은 역 주변 행려자와 라면 끓여 먹어

김연수 사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일할 때 사무실 옥상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했다.

결혼 전 남편은 자신을 나무꾼으로, 나를 선녀로 불렀다. 어느 때는 선녀가 천사로 바뀌기도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이 부르는 호칭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역할은 바뀌었다. 나무꾼 여자와 선남으로. 생존의 험준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먹을거리와 땔감을 장만하는 건 내 몫이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할 때마다 남편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며 담대해 했다. 참 신기하고 놀랍게도 남편의 말은 현실이 됐다. 남편을 따라 다일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던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 주셨다. 다만 이번에도 나무꾼의 역할은 나였다.

창립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크리스챤아카데미(현 대화문화아카데미) 강원용 목사님으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챤아카데미는 1960년대 도입된 대화운동, 중간지도자 교육, 의료보험법, 모자보건법 등의 산실이 된 곳으로 내가 두 달 전에 이력서를 내놨던 곳이었다.

그간 해왔던 원고 아르바이트는 하는 만큼 수입이 돼 돌아왔지만, 그런 만큼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나쁜 버릇이 생겨 점점 멀리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만남조차 반갑게 여기지 않는 내 모습에 놀라 월급 받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왔다.

출근 첫날 자리에 앉자마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다행히 월급도 내가 교사로 있을 때만큼으로 책정됐다. 내게 주어진 일은 강 목사님의 책들을 읽고 관련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자서전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설교 테이프를 풀어 원고로 만드는 일도 했다.

강 목사님의 설교 정리는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난필에 한문과 영어, 독일어를 섞어 쓴 원고라 일은 고됐지만 내용이 너무 좋았다. 매 설교가 구약·서신서·복음서 세 개 텍스트로 짜여 있었고, 이를 꿰뚫는 해석과 지혜 그리고 미래를 예견하는 놀라운 힘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훌륭한 기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한국사와 기독교 역사에 족적을 남기신 분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곳에서 일을 배우면 남편의 목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겠단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우리는 직장 근처인 수유리로 이사했다. 반지하였지만 직장에서 가까워 아침에 출근했다 아이들 점심 챙겨주러 잠깐 들르기에 용이했다.

이렇게 내가 육아와 직장 일에 매달리는 동안 남편은 청량리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행려자들과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 난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회를 개척했으니 날마다 교회에 가서 전도를 하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남편은 허름한 점퍼에 낡은 구두를 신고 출퇴근했다. 내가 퇴직하며 샀던 차는 낡은 봉고차로 바꿨더랬다. 그 통에 우리 두 아이는 사뭇 불만이었다. 남들로부터 너희 아빠 실직자 아니냐는 질문까지 받았단다.

하루는 윗집 아이들한테 “너네는 가난해서 지하실에 살지. 집도 없어서 세를 살고 있잖아”라는 놀림도 받았다. 이런 얘길 들을 때면 속이 너무 상했다. 하루는 참다 참다 남편에게 “지금은 독립운동 한다고 처자식 팽개치고 만주벌판 헤매는 시대가 아니에요. 가족 희생시키면서 하는 건 미덕이 아니에요”라고 쏘아붙였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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