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이었던 바울, 그는 왜 ‘예수 따르미’가 됐나

1세기 사회적·사상적 배경 면밀히 분석 ‘인간 바울’ 입체적으로 복원

바울이 믿음 안에서 꿈꾼 불온한 상상은 세상을 바꿀 이상이 됐다. 사진은 동방정교회 성당에 그려진 바울. 픽사베이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노예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새번역)

사도 바울이 쓴 편지에 등장한, 2000년 넘게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도대체 뭐가 없다는 걸까.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바울이 보기에 계급·성별·국적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어떤 걸림돌도 되지 못했다.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위계서열이 철저했던 1세기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매우 불온한 사상이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선 모두가 동등하다’는 사상 전파를 위해 목숨 걸고 로마 제국 곳곳을 누볐다. 로마 시민이자 바리새파 유대인으로 제국의 특권층이던 그는 왜 열성적인 ‘예수 따르미’가 됐을까. 당대의 상식을 깨고, 인류사의 지형을 뒤바꾼 그의 예수운동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톰 라이트 ‘바울평전’

톰 라이트 영국 세인트앤드류스대 신학대학원 교수의 ‘바울 평전’(비아토르)과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의 ‘바울을 읽다’(비아)는 이런 궁금증에 집중한 책이다. 저명한 성공회 신학자인 이들은 각각의 책에서 1세기의 사회적·사상적 배경을 세밀히 분석해 인간 바울을 입체적으로 복원했다.

라이트 교수는 ‘바울 평전’에서 신학이 아닌 그의 생애와 발자취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볼 때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바울의 행보는 기이한 것이었다. “바울과 같은 배경을 갖고 같은 교육을 받은 이들은 마땅히 성자가 되고 학자가 됐지, 바울처럼 되진 않았다.” 그를 추동한 동인은 뭘까.

저자는 이 답을 얻기 위해 바울이 몸담은 유대와 그리스·로마 세계를 조명한다. 국제도시 다소에 살면서도 유대교 규율을 엄격히 지켜온 바울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초대교회의 증언은 신성모독이었다. 그의 세계관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직접 대면하며 급격히 바뀐다. 이 일로 눈이 멀었지만, 자신이 파멸시키려 했던 초대교회 소속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눈을 뜬다.

육안(肉眼)과 영안(靈眼)이 열리면서 바울은 예수 따르미의 삶을 살게 된다. 책은 바울이 다소로 돌아간 뒤 10년간 그리스도의 도를 깊이 궁구하며 지낸 것으로 전한다. 예수를 따르면서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의 결혼도 포기했을 것으로 본다. 추측을 이어가는 건 바울이 여성 혐오자가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라이트 교수는 “훗날 여성 동역자와 친구를 얻은 바울은 여자를 하나님 백성 내 한 가족으로 봤다. 사역에서도 그렇게 본 것 같다”고 한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등 서신서에 기록된 바울의 성격은 성마른 편이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촘촘한 논리로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재능만으로 예수운동이 성공한 건 아니다. 바울의 조언대로 살았던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라”는 바울의 격려에 따라 아무런 차별 없이 사랑을 펼친 공동체는 결국 제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다.

로완 윌리엄스 ‘바울을 읽다’

‘바울을 읽다’ 역시 1세기 사회상 속 바울의 면모를 그려내며 예수가 제시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참신함을 강조한다. 윌리엄스 전 대주교는 바울이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간 새로운 관계 방식’을 전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격 없는 이를 하나님 백성으로 맞아주는 예수의 ‘보편적 환대’에 주목했다. 이 논리는 중세를 거쳐 18세기 말 노예무역 폐지 운동으로 이어졌다.

지금껏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연구해온 이들이어서인지 두 책이 한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꽤 있다. 바울을 향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윌리엄스 전 대주교는 “바울은 종종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성에 부정적이었던 도덕주의자란 혹평을 받는다. 이런 입장은 바울 이해의 절반만 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바울에게 도덕은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방법이자 균형 잃은 욕심, 성적인 탐욕, 자기 의를 버리는 행위였다. 1세기 인간 바울의 고뇌와 열정을 헤아려보면 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상당부분 피상적이고 왜곡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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