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5) 남편에게 통장 내밀며 “행려자들 밥 지어주세요”

행려자에게 라면 먹이는 게 안타까워 밥 못 넘기는 남편 보며 함께 울어

김연수 사모의 남편 최일도 목사가 다일공동체 초창기 시절 서울 청량리에서 행려자들을 대상으로 라면을 끓일 때 썼던 양은 냄비.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다시 시작했다. 마침 반포에 아는 분이 자기 아들과 친구 4명에게 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문법 정도 가르치면 되겠거니 해서 갔더니 뜻밖에 독서지도를 해달라고 했다. 나름의 독서지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반응이 괜찮았다. 덩달아 아이들 성적도 올라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입소문이 나더니 여기저기서 같이 하자는 데가 많았다.

내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며칠에 한 번씩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날은 벼룩이 튀는 옷을 입은 채로 아이들을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 벼룩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톡톡 튀는 벼룩이 신기하다며 마냥 재밌어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려니 속이 끓어올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부글거리는 맘을 부여잡고 밥상을 차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이 밥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몇 번 밥숟가락을 입에 밀어 넣다가는 이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처음엔 속이 안 좋은가보다 했다. 하지만 남편 눈가에 가늘게 맺힌 눈물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마음 한구석에 짚이는 게 있었다. 그는 속울음을 울고 있었다.

“삶이 뭔 거 같아요. 삶은 라면이에요”라고 남편이 물었던 적이 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했는데 평소 술주정이 심하던 젊은이가 남편에게 묻더란다, 삶이 뭐냐고. 왜 어떤 놈은 살맛 나고, 자기는 죽을 맛이 나냐고. 남편이 뭐라 할 말이 없어 듣고만 있는데 곁에 있던 노인이 삶은 라면이라고 했단다. 남편은 두 사람의 대화가 하도 어이가 없어 웃으려다가 문득 그게 웃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삶이 라면으로 이어지는 기막힌 현실에 그만 울컥하더라고 했다.

남편은 청량리 한복판에서 행려자들과 같이 먹고 함께 뒹굴어도 결코 그들과 똑같을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자책했다. 그들에겐 라면을 끓여주고 자신은 집에 와서 따뜻한 밥을 먹는다는 것에 목이 메어 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뒤집히다 못해 꺽꺽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되려 머쓱해했다.

한참을 울다 남편에게 예금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으로 당신 소원 푸세요. 한 끼라도 밥을 해서 그 사람들에게 실컷 먹여 보세요.” 남편은 놀란 눈을 하고 “이걸 어떻게 갖고 가느냐”고 했다. 그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려고 일부러 나는 “무거운 라면 끓일 물도 들고 다니면서 이렇게 가벼운 것도 못 들고 가냐”고 면박을 줬다.

그리고 진심을 전했다. “하루라도, 한 끼라도 그분들에게 밥을 지어드리세요. 당신 소원이기도 하고, 내 소원이기도 해요. 그러니 제발 속울음 좀 그만 울어요.”

남편은 그 돈으로 10인분 밥을 지을 수 있는 전기밥솥 4개와 40명분의 수저를 샀다. 남편은 그해 부활절에 흰쌀로 지은 밥과 소고깃국, 김치와 잡채 등을 식판에 담아 거리의 식구들과 나눴다. ‘밥퍼’의 시작이었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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