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내놓은 ‘2020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경제전망 자체보다 더 눈길을 끈 구절이 있었다. 증세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KDI는 “최근 급격한 재정 적자 증가는 향후 재정건전성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브리핑에서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증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가 증세론을 제기한 것은 지금 상태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의 38.1%였던 국가채무(중앙정부 채무+지방정부 채무)는 3차 추경을 포함하면 올해 45%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도 안 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7% 포인트나 급등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문재인정부 들어 급증한 복지 지출과 의료보장 확대를 고려하면 재정건전성 문제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한다면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 이미 기존 고용보험기금이 올해 말 고갈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증세 논의 없는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들을 수 있다.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증세보다는 재정 지출 구조조정이 더 시급하고 현실성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비복지 부문 예산 중 낭비를 줄여 복지예산으로 쓸 수 있는 여력이 많다”고 했다. 단기적으로 비복지 지출 감축을 한 뒤 시간을 갖고 증세 방안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증세 결정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큰 데다 구체적으로 어느 세목을 손댈지를 놓고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가 고비를 넘기더라도 2년간 논의한 국민연금 개편을 흐지부지 끝낸 이번 정부가 증세를 공론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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