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정신요양시설 입소자 225명의 평균 나이는 60.9세, 평균 재원기간은 6052일(16년6개월)이다. 입소자 89명은 20~30년을 그곳에서만 지냈다. 세대가 뒤바뀔 정도의 세월 동안 시설에서만 지내온 삶은 어떤 모습일까. 국민일보는 지난 4~5월 시설 측 협조를 받아 그들의 일상에 들어가봤다.

‘오전 6시30분 기상, 8시 아침 식사, 8시40분 첫 흡연, 9시10분 아침 투약, 9시30분 위생(세면) 및 청소, 10시30분 커피타임, 12시 점심 식사, 오후 3시 간식시간, 5시 저녁 식사, 6시 저녁 투약, 8시 마지막 흡연, 밤 10시 소등.’

티타임 1번, 흡연 7번, 식사 3번, 투약 2번…. 여기에 노래나 산책 등 활동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정신요양시설 입소자에겐 평일 13~14개 정도 일과가 있다. 기상부터 취침까지 15시간30분. 평균을 내면 거의 시간 단위로 일정이 있는 것인데, 입소자들의 시간은 도무지 천천히 간다.

“그냥 시간 때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세월은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다. 일과표대로 일어나 먹고 잠들고, 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를 수십년 반복하는 동안 입소자 삶에서 개인의 의미는 희미해지는 듯했다.

시간에 치이다

“일찍 일어나요, 6시에. 밥 먹는 시간 외엔 복도에 있는 소파에 나와 앉아 있어요, 하루 종일.”

-즐거웠던 일은요?

“없어요.”(김모씨·63)

“답답하죠. 식사 전까진 이렇게 실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TV는 좋아하는 프로도 없어서 잘 보지 않고요.”(명모씨·60)

“방에 그냥 가만히 있다가 식당 가서 밥 먹고, 재미가 없죠. 시간 날 때 편지를 써요, 면회 좀 오라고. 옛날 주소 다 외우고 있어서. 근데 답장은 없어요.”(양모씨·67)

일정 사이사이 빈 곳은 모두 입소자들 ‘자유’ 시간인데, 이때 무기력이 퇴적물처럼 쌓이고 있었다. 한 층에는 대략 70명이 지내는데, 그 시간 방에 누워있는 사람이 20~30명은 됐다. 나머지는 길이 50m, 폭 2m 정도의 복도에 나와 시간을 죽였다. 직원 공간 앞 TV 주변에 5~6명이 코로나19 뉴스 특보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는 벽에 기대 멍하니 앉아 있거나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증상의 일종이라고 한다. 입소자들끼리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복도는 부산하고 혼잡했다.

1998년 입소한 전정인(가명·69)씨는 그 틈에서 공용컴퓨터로 인터넷 바둑 게임에 심취했다. “취미이자 낙이에요. 시간이 잘 가서.” 13년째 시설 거주 중인 홍기덕(가명·57)씨는 컵을 닦았다. “병실에서 컵이나 닦고 그러죠. 사시사철 닦는 거예요. 다른 재밌는 일이 없으니.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그런 거라도 해야죠.” 홍씨처럼 시도 때도 없이 컵을 닦는 사람은 층마다 여럿 보였다.

무료함의 의미도 세월이 지나면 달라지는 모양이다. 34년 시설 생활자 이남균(가명·55)씨는 과거 상담사들에게 “즐거운 일이 많지 않아서 시간 보내는 게 힘들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십 년이 되니깐 지루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고 했다.

정신요양시설 생활인이 지난 13일 앞마당에 쪼그려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생활인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타임’은 하루에 한 번 운영된다. 윤성호 기자

평범한 일상을 흉내 낼 수 있는 시간은 커피타임 정도다. 오전 10시30분, 시설 앞마당 앞에 약 30m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입소자들은 각자 컵을 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직원들이 컵에 믹스커피를 부어주면 앞 테이블에 놓인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았다. 커피를 받기 위해 컵을 들고 길게 줄 선 모습은 생경했다. 한 생활지도사가 “저희도 어색해서 줄을 세우지 않고 자유롭게 하려고 했었는데 잘 안되더라”고 했다. 다른 생활지도사는 “사회에서도 ‘맛집’에서 밥을 먹으려면 줄을 서지 않느냐. (사회와 비슷한 걸) 이때라도 학습하자는 식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커피를 탄 입소자들은 해가 드는 건물 외벽을 찾아 앉았다. 직원 네댓이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대비해 앞마당 곳곳에서 이들을 지켜봤다.

입소자들은 커피를 좋아하지만 하루에 딱 한 번, 이 시간에만 마실 수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약물 복용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25명에게 한꺼번에 줄 수 없어 층별로 시간대를 조금씩 달리한다. 짧은 시간 생기가 돌았다가 금방 사그라졌다. 이 시설처럼 ‘커피타임’을 시행하는 곳도 많지는 않다. 찬바람이 불어 커피타임은 20분 만에 종료됐다.

“아이고, 내가 졌다. 담배 피우러 가실게요!”

점심 식사 직후 생활관 2층 복도 끝 철문 앞에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직원이 뛰어왔다. “담배 피워요.” “문 열어줘요.” 생활인들 재촉에 흡연시간이 몇 분 당겨졌다. 직원이 목에 건 카드키를 대자 ‘띠익’ 철문이 열렸다.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익숙한 듯 문 옆 신발장에서 야외용 슬리퍼를 갈아 신었다. 그러고는 뻐끔뻐끔 말없이 연기만 내뿜는다.

“새벽에 흡연하고 싶어 하시는 분도 있고, 기상 후 첫 담배를 원하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건강 문제나 안전 문제도 있고, 또 야간 타임에는 한 층에 직원 한 명이 사람들을 다 봐야 해서 다 해드릴 수가 없어요.”(직원 A씨)

“하루는 머리가 하얀 꼬부랑 할아버지가 따님 청바지를 사서 면회를 왔는데 따님도 연세가 많으셨어요. 면회 끝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날 하루가 무거웠어요. 내 가족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죠. 인원이 적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에요.”(직원 B씨)


술래잡기

생활지도사 C씨는 매일 술래잡기를 한다. 지난 13일엔 갑자기 시설 밖으로 내달리는 이미선(가명) 할머니를 잡으려고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생활관으로 올라가야 해요.”

“차 타고 싶어요. 전에 아이스크림 먹은 거 좋았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나가요, 나중에요.”

“언제 먹을 수 있어요?”

몇 달 동안 외출을 못하니 갑갑한 모양이다. 어르고 달랜 뒤 시무룩해하는 할머니 등을 토닥이며 생활관 3층까지 안내했다. 미선 할머니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뒤 잠시 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옆방에서 이내 다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선생님, 저 옷 안 살래요.” 얼마 전 긴급재난지원금 설명을 듣고는 트레이닝복을 사고 싶다고 했던 고성미(가명)씨다. 왜냐고 물을 새도 없이 옆방 이순자(가명) 할머니가 다가와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나 부라자 사다줘, 3개.”

시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직원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사다준다. 외투나 속옷부터 노트나 볼펜까지 세세한 심부름을 모두 직원들이 챙겨야 한다. 입소자 대부분이 무연고자이거나 가족 지지가 약했고, 스스로 자율 외출을 통해 물건을 사 올 수 있는 사람은 3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품 배급은 저녁에 이뤄졌다. 복도에 빵, 노트, 시계, 열쇠고리 등이 놓였다. 직원이 이름을 호명하니 복도를 기웃대던 사람들이 방에서 나와 물건을 받았다. “아이, 이런 노트를 말한 게 아닌데.” 입소자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줄무늬 노트를 원했는데, 손에 들린 건 백지 노트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물품 배급을 자주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다른 일손을 줄여야 한다. 시설은 입소자들의 심부름 항목 챙기는 일을 ‘욕구조사’라 불렀다.

분주

직원들은 그 일이 아니어도 바빴다. 직원 28명(생활지도사 20명, 간호사 8명)이 일과표에 맞춰 입소자 225명을 돌보려니 시간은 빠듯하고, 그래서 규칙과 효율은 필수였다.

“아이, 쓰레기 여기다 이렇게 넣지 말라고 했지요. 얼른 버리세요.”

“○○씨, 왜 자꾸 식사를 안 하세요? 미숫가루 드릴까요? 가자, 나랑 같이.”

“△△씨, 같이 사는 사람 때리면 돼요, 안 돼요?”

쓰레기를 주머니에 넣는 사람을 말리고, 뱃속에 약이 꽉 차 있다며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 환자용 유동식(액상 음식) ‘뉴케어’를 먹이고, 다른 입소자를 때린 이를 타이르느라 직원들은 분주했다. 이런 일은 하루 종일 끊임없이 반복돼 시설에서는 ‘소소’한 일상이다.

오후 3시에는 트롤리(이동식 선반)를 끌고 방을 돌며 우유와 빵을 나눠줬다. 생활지도사는 ‘요주의 인물’이 있는 방에 들어갈 땐 입소자가 간식을 입에 넣는 것까지 다 보고 움직였다. “지금 드세요, 또 뺏기지 마시고.”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기능이 좋은 사람이 말이나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의 간식을 뺏어 먹거나 옷을 가져다 입는 일도 종종 있다. 3층 담당자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6시30분 퇴근할 때까지 30분 휴게시간 빼고는 그렇게 움직였다.


빈틈

쉴 틈 없이 움직여도 빈틈은 생긴다. 조금만 신경을 덜 써도 최득선(가명) 할머니 주머니에서는 곰팡이 슨 음식과 쓰레기가 나왔고, 7~8일 똥을 못 싸는 입소자가 생겼다.

4층 생활관은 오전부터 시끄러웠다. “쿵 해서 여기가 아파요.” 박효숙(가명·61)씨가 서혜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며칠 전 바닥에 세게 앉다가 두덩뼈를 다쳤다. 담당 직원은 “정신과 약을 먹다보면 뼈가 약해져서 앉다가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일이 잦은 편”이라고 했다.

시설은 정형외과 입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상태를 묻기보다 “왜 담당 직원이 바뀌었냐”며 따졌다.

정신요양시설 설치기준 및 운영규칙에 생활지도사 정원 규정은 입소자 25명당 1명으로 정해져 있다. 225명이 살고 있으니 법상 생활지도사는 10명만 두면 된다. 이 시설에는 그 배인 20명이 근무하고 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잦을 수밖에 없다. 한 직원은 “한 층 입소자 70여명을 직원 몇 명이서 나눠 돌봐야 한다. 전체적으로 관찰만 하고, 문제가 안 나게끔 하는 수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직원은 “국가에서 원하는 요양은 이 인력으로는 어렵다. 지역사회로 갈 수 있도록 하려면 퇴원 계획을 세우고 재활훈련도 다 해야 하는데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다. 아예 누워만 지내려는 분한테 요양서비스를 다 해드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상의 교차

오후 6시30분, 야간 직원과의 교대시간이 됐다. 직원들이 퇴근 준비를 하며 유니폼을 갈아입는 동안 저녁 투약까지 마친 입소자 몇몇은 벌써 이불을 펴고 있었다. 방이 아닌 복도에 이부자리를 깔아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왜 방에서 안 주무세요?” 하고 묻자 “더버서요(더워서요)”라고 한다. 직원이 모두 퇴근하고 당직자 4명만 남았다.

생활관을 나오는 통로에는 ‘생활인 고충처리 위원회 결과 보고서’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말 입소자 건의사항에 대해 시설 측이 답변한 내용이었다. “떡라면을 먹고 싶습니다.” “요양원 내 웅덩이에 금붕어를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고등어를 좀 맛보게 해주세요.” “1층에 분재나 어항을 배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상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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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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