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6) 영성수련의 꿈, 개신교 최초 수련원으로 결실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수련원 열고 싶어 강원룡 목사님 찾아가 운영 계획 털어놔

김연수 사모가 지난 1월 경기도 가평 설곡리 다일영성수련원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년 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올해 200회를 맞았다.

신혼 초 광장중학교 교사 시절 교감 선생님이 한번은 내게 꿈이 뭐냐고 묻기에 이렇게 답했다. “산 좋고 물 좋고 경관이 수려한 곳에 기도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들이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침묵의 집’을 짓고 싶어요.”

남편과 결혼하고 수녀복을 벗으면서 개신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내가 찾은 건 영성수련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아이고, 그야말로 꿈이네”라며 혀를 차셨지만, 난 그때 영성수련원에 대한 꿈을 진지하게 꾸고 있었다. 남편 신학교 커리큘럼에도 관련된 내용이 없길래 장로회신학대 오성춘 교수님을 찾아가 “P학점(이수/미이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데 신학대 교실 하나만 내어 주실 수 있느냐”고 당돌하게 요청했다.

물론 수업이 쉽게 생길 리 없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발로 뛰면서도 영성수련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귀 밝으신 분이셨다.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영성수련의 첫발을 떼게 도우셨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강원룡 목사님을 찾아가 “이곳에서 풀려고 들고 온 보따리가 있는데 이러다간 풀어보지도 못하겠습니다”고 운을 뗐다. 강 목사님이 “그 보따리가 뭐냐”고 물으시기에 영성수련 계획을 말씀드렸다. 어렵게 꺼낸 말이었지만 강 목사님은 시원하게 “한 번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1980년대 말은 각 교단 신학대마다 영성신학 강의가 막 시작됐던 때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기도하며 목회자들을 위한 영성수련 프로그램안을 작성했다. 총 4단계로 구성된 수련과정을 우선 수립하고, 단기·중기·장기 수련안을 부가적으로 덧붙인 계획안이었다. 우리나라 1호 영성신학 박사인 가톨릭대 박재만 교수님을 비롯해 한신대 김경재 목사님, 오 교수님 등이 계획안 작성에 도움을 주셨다. 계획안은 크리스챤아카데미 임직원 설명회와 교회 협력위원회, 신학자 협력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프로그램으로 확정됐다.

이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다. 영성수련 프로그램의 기본이 되는 침묵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목사님들은 영성수련 전 과정을 침묵 속에 진행한다는 데 어색해 했다. 대화시간을 갖고 나눔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견해였다. 그러나 나는 깊이 있는 영성생활을 위해선 침묵수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침묵수련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하는 훈련이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다행히 목사님들의 양보로 이 논쟁은 일단락됐다. “저렇게 고집이 세니, 수녀원에서 10년씩이나 살았지.” 목사님들로부터 칭찬인지 질타인지 모를 말을 들으면서 얻어낸 결과였다. 영성수련이 좋은 표현인지, 영성훈련이 적합한 표현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영성수련으로 최종 합의됐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신교 최초 공식 영성수련이 1990년 7월 18일 시작됐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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