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뉴시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관련한 여권의 압박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반면 당시 법원은 “강압수사는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권의 주장은 당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던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씨에 대한 검찰의 강압수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씨의 비망록에서 이런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향후 공수처를 통해 ‘위법 수사’가 드러나면 재심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의원들은 ‘한 전 총리 사건이 공수처 수사 범위’라며 불 지피기에 나섰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비망록을 토대로 한 강압수사 논란도 당시 1~3심에서 다뤘던 문제라 새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한 전 총리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도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비망록과 함께 한 전 대표의 법정 진술까지 포함해 내린 판단이다.

당시 한씨는 1심의 여덟 번째 재판에 출석해 “매주 검찰에서 시험을 본다면서 불러서 변호사 질문 피하는 법과 자금제공 횟수 등을 훈련시켰다. 검찰에서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분위기를 죽여서(험악하게 해서) 모멸감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비망록 내용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1심은 “반복 조사를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지 실제 강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씨도 앞서 두 번째 재판에서는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1심은 또 70여 차례 소환에 대해 “수사 개시부터 증인신문까지 9개월이 소요됐다는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은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결론 내리고 한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1심 판결에서는 한씨가 왜 금품 공여 사실을 진술했는지에 대한 이유들도 일부 엿볼 수 있다. 한씨는 검찰 단계에서 ‘당시 회사와 거래처에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던 점’을 진술 이유로 꼽았었다. 직원들이 검찰에서 이런 사실을 말하면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아 진술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또 한씨는 검찰 조사 당시 ‘물심양면 도왔던 한 전 총리 측에서 내가 구속된 지 1년이 다 되도록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또 당시 한씨는 경영권 분쟁 중이었는데 검찰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진술이 회사를 찾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검찰에 서운한 감정도 가졌다.

1심은 이런 점을 볼 때 한씨가 사적인 감정에 바탕을 둔 진술을 했을 수 있다며 검찰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한씨의 검찰 진술이 금융 자료 등 객관적 사실과 더 부합한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한씨는 별도의 위증 혐의로도 기소돼 1~3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당시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한씨는 2004년 자신이 소유한 사무실을 한 전 총리에게 시세보다 낮게 임대해줬다. 한 전 총리는 이후 감사 표시로 한씨에게 넥타이를 선물했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 한씨를 총리공관으로 초대해 만찬을 했다. 한씨는 2007년 3월 한 전 총리의 일산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담당했다.

한 전 총리는 2008년 2월 한신건영 부도 후 한씨를 병문안했다. 병문안 다음 날 한 전 총리의 보좌관이 한씨 측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 돈 전달 직후 한씨와 한 전 총리는 2차례 통화했다. 한신건영 자회사가 발행한 1억원 수표를 한 전 총리 동생이 2009년 전세금으로 사용했다. 법원은 한씨와 한 전 총리의 친분관계가 인정되고, 금품 수수는 한 전 총리가 직접 관여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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