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아포리즘을 남겼다. 이런 아포리즘을 읽다 보면 완전히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탓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곰곰이 곱씹어보면 서로 다른 주장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아포리즘 자체에 깃든 의미는 결국 서로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서로 다른 주장이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이유는 그와 같은 아포리즘이 글쓰기의 태도와 자세를 가리키기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식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동일한 태도와 자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기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와 형용사로 꾸며져 있다’고 했지만 그의 문장에도 부사와 형용사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의 말을 거짓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부사와 형용사를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절제해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말은 부사와 형용사 같은 수식어에 문장의 의미를 의지하려는 태도와 자세를 경계하라는 뜻인 셈이다.

수사법 그러니까 비유법에 대한 해묵은 오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사실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오해는 연원이 깊고 보편적이기까지 해서 비유를 사용하지 않은 문장만이 참된 문장이라는 식의 주장도 흔히 접할 수 있다. 물론 비유를 아껴 사용하라는, 태도와 자세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비유에 대한 불신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아마도 비유를 남발한 문장이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더라도 별 의미 없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서일 것이다. 화려한 문장일수록 거짓과 기만의 문장일 가능성이 크고, 비유가 풍부할수록 내용은 초라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결국 이런 불신이 생겨난 이유는 비유의 목적을 오해한 문장들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은 문장을 화려하게 꾸며 읽는 이를 유혹하고 기만하려는 게 아니다. 비유의 목적은 분명한 이미지를 제시해 읽는 이가 더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이걸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텍스트가 바로 성경이다. 물론 성경 외에도 어떤 비유가 좋은 비유인지를 증명하는 텍스트는 많지만 거의 독보적이라 할 만큼 성경에는 수많은 비유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비유들은 읽는 이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무슨 뜻인지 헤매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읽는 이가 무슨 의미인지를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여 그 문장을 더 깊고 진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도와준다. 비유에는 더 쉽고 분명하게 제시해 독자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깃들어 있다. 또한 그런 경우의 비유는 너무나 선명해서 그 하나의 이미지에 읽는 이를 매몰시키기는커녕 배후에 수많은 다른 이미지를 품게 돼 오히려 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성경이 오랜 세월 말 그대로 바이블일 수 있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비유의 목적을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게 실현했다는 데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 문장과 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비유가 부족하거나 넘쳐서가 아니라 비유하는 이유를 오해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비유는 거대한 힘을 지녀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단편 ‘광기의 풍토’에서 주인공인 소년은 어느 날 망원경을 선물로 받는다. 멀리 있는 사물을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망원경이란 얼마나 매혹적인가. 소년은 누구나 그러했을 것처럼 망원경에 푹 빠져 멀리 있는 것도 보고 가까이 있는 것도 보고 그러다 거꾸로 돌려서 보기도 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결국 싫증이 나서 새롭게 볼 만한 무언가가 없나 생각한다. 소년은 저녁 무렵이면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소년은 창가에 앉아 할머니가 늘 보던 곳을 망원경으로 본다. 거기에는 그저 산이 있을 뿐이었으나 소년은 그때까지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었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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