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페친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을 찾아서 봤다. 2045년 가상현실(VR) 오아시스(OASIS)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가 게임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을 찾아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정보기술(IT) 전문가인 페친의 영화 설명을 지면에 옮겨본다.

“VR 게임 속에서 사는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거지 같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2045년의 미래 인류는 다들 VR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에서 아바타로 게임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미래가 더 이상 그리 멀게도 또는 이상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 세상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현실이 돼 가고 있다. … 현실은 영화처럼 구리고 우리는 가상에서만 보상을 받고 살아야 할까.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 없이 살아간다. 가상이 더 현실적이 된 삶을 살고 있다.”

이 영화가 그린 것처럼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과 유행성 전염병으로 인류가 생존 문제에 직면하면서 미래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잿빛일지 모른다.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AI에 일자리를 빼앗겨 버린 인류. 스티븐 호킹이나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주장대로 인류 멸종을 피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민을 가야 하나. 아니면 반대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예언했던 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유희하며 명예와 진리를 좇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언택트 시대이면서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이퍼 커넥티드 소사이어티(초연결사회·유비쿼터스시대)의 인간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 본성에 대한 규정부터 필요할 듯하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또는 이타적인가, 이기적인가. 동서고금에 걸친 해묵은 논쟁이긴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몇 가지 희망적인 시그널을 봤다. 일상을 멈추고 환자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로 달려간 의료진이 있었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가게를 돕기 위해 SNS에 올라온 상품이 순식간에 완판되기도 했다.

코로나 환자들을 돌본 의료진에게 감사를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착한 소비 캠페인’, 화훼농가를 돕기 위한 ‘플라워 버킷 챌린지’도 SNS로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오프라인 접촉을 끊어놨지만 ‘집콕’ ‘방콕’족들이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공감능력은 더 커진 듯하다. 단절시대, 초개인주의 시대의 아이러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모임 ‘말씀과 순명’을 중심으로 수도권 80여개 교회들은 공감소비운동으로 전통시장 상인 돕기와 취약계층 지원, 미자립교회 돕기에 나섰다. 분당우리교회 등이 주도한 미자립교회를 위한 월세대납 헌금은 수십억원이 걷혔다. 온정은 해외로도 이어졌다. 자신이 디자인한 유아용 이불을 제작해 유럽, 일본에 납품하던 대구공장에서 마스크를 제작해 미국 뉴욕경찰에 기부한 한인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온누리교회 등 예장통합 소속 대형 7개 교회는 국내에 이어 해외 체류 한인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았다. “70년 전인 1950년 6·25전쟁 때 미군이 우리나라를 도왔듯이 코로나로 최악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을 한국이 두말없이 도와주자.” 한국계 미국인인 최상준 한세대 기독학술원장의 국민일보 기고를 통한 이 같은 제안에도 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어쩌면 코로나는 한국교회와 인류에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암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줬는지도 모른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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