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대가 왔다. 영대는 내가 천호동에서 편의점을 하던 시절 야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녀석이다. 3개월쯤 했으려나? 하루가 멀다 하고 직원이 바뀌고 그만두는 편의점에서 그 정도 인연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데, 영대처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는 그리 흔치 않다. 내가 부덕한 탓이리라.

“요즘 뭐해?” “버스 운전 배우고 있어요.” “오호, 그건 왜?” “고속버스 기사 하려고요.” “그거 경쟁이 치열하다 하던데.” “마을버스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가면 돼요.” 우리는 줄곧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 알고 있는 정보를 주고받았다. 마침 책꽂이에 버스 기사가 쓴 에세이 한 권이 있어 영대에게 건넸다. 영대는 바지런한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다 겪었고, 군대에 갔다 온 다음 유통회사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택배 기사로도 운전대를 잡았다. 직업 하나로 성이 차지 않아 주말에는 오토바이 배달을 하고, 대리운전도 꽤 오래 하는 중이다. “너무 무리하지 마” 걱정하니 “젊을 때 바짝 벌어야죠” 하며 이젠 제법 어른스레 웃는다.

영대가 편의점에 면접 보러 왔던 날이 떠오른다. 사실 영대를 채용하지 않으려 했다. 비쩍 말라 왜소하고 얼굴에 솜털이 보송해 꼭 고등학생 같았다. 청소년을 채용하려면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하고, 야간근무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돌려보내려 했더니 스물한 살이라며 당당히 신분증을 내밀었다. 형이나 삼촌 신분증을 들고 온 것 아닌가 꼼꼼히 살폈을 정도다. 제대로 일이나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채용했는데, 웬걸 복덩이를 만나 한결 시름을 덜었다. 언제나 제시간에 출근해 유쾌하게 근무 교대하고, 자기 담당 아닌 일까지 솔선수범했다. 손님에게 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오늘은 웬일이야?” 영대가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파란 케이크 상자 하나를 삐죽 내민다. “스승의 날이잖아요.” 순간 감전된 듯 찌릿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나랑 전혀 상관없다 여겼던 날에 선물을 받아본 사건은 올해가 처음이다. “너 이렇게 사람을 막 감동시키고 그래도 되는 거야?” 하면서 허허허 웃었다. 찔끔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스승의 날에 은사님 생각을 떠올리지도 않았네’ 하면서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내 인생의 스승은 누구였더라?’ 하면서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나이 어린 영대가 내게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준 스승인 셈이다.

영대에게 알리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영대가 우리 편의점에서 일하고 며칠 지났을 때 어떤 아주머니께서 편의점에 찾아왔더랬다. 공손히 인사하더니 자기가 영대 어머니라고 했다. 숱한 직원을 부려 봤지만 아르바이트생 어머니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했다. “약해 보이고 숫기 없어도 성실한 아이입니다. 편의점 일을 잘 가르쳐주세요.”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신다고 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로구나 싶었다. 스승은 주위 가까이 있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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