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는 일제 강점기 후반에 전쟁터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소에 끌려가 성 착취를 당한 여성들을 말한다. 규모가 적게는 5만명, 많게는 2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한국(조선) 출신이 가장 많았다. 이들은 질병과 부상으로 현지에서 사망하기도 했고 일본 패전 후에는 방치됐다. 자포자기에 빠져 이국 땅에 남은 이들이 적지 않았고 운 좋게 고국으로 돌아왔어도 대다수는 과거를 감춘 채 숨어 지내야 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도 철저하게 무시됐던 이들의 존재는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듬해 신고센터를 설치했고 이를 통해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지난 3월 기준 240명이지만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 등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정부의 사죄·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외교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1996년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등에 나설 것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형식적인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혔을 뿐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5년 12월 양국 정부가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빠진 데다‘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란 표현, 소녀상 철거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사실상 용도폐기됐다.

그러는 사이 고령의 생존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떴다. 26일에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살던 한 분이 별세해 공식 생존자는 17명으로 줄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25일 공개한 기자회견문에서 ‘제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일본의 사죄와 배상 및 진상 공개는 꼭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머니가 원하는 해결 방식이 생전에 빛을 보려면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꿔야 할텐데, 지금 태도로 보면 요원하다.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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