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송재익 캐스터. 많은 어록을 남긴 그는 지난해 10년 만에 중계 현장에 복귀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성호 기자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있지만, 마치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런 분위기에요.” “울산에 멋진 태화강이 있지 않습니까? 태화강에 배수진을 칠 것 같아요.”

지난 17일 울산 현대가 수원 삼성에 3대 2 대역전승을 거둔 프로축구 K리그1 경기. 추억 속 어딘가에 소중히 저장돼있던 음성이 축구팬들을 맞이했다. 찰떡같은 멘트를 쏟아낸 이는 송재익(78) 캐스터. 1990년대와 2000년대 ‘스타 캐스터’로 군림했던 그가 K리그1 무대에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송 캐스터의 등장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중계가 시작되자 온라인 중계 채팅창과 축구 커뮤니티 게시판은 그의 멘트에 대한 반응으로 가득 찼다. 뜨거웠던 경기 내용이 오히려 뒤로 밀릴 정도. “게시판이 송재익 해설 청취회 같다”는 반응부터 “후크송을 듣는 것처럼 중독됐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느낌”이라는 성원까지. 지난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중장년층 공략을 위해’ 송 캐스터를 영입했지만, 그의 어록은 20, 30대 젊은 축구팬들에게 ‘밈(MEME·패러디되거나 변조된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유행하게 되는 현상)’처럼 번졌다. 나이든 축구팬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송 캐스터를 만났다. 그는 “경기장에서 나를 알아보고 ‘아버지 갖다 준다’며 사진 찍자고 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엉뚱하게 나타난 사람을 젊은 친구들이 반겨주니 다행”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1942년생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정정했다. 중후하고 똑 부러진 목소리도 변한 게 없었다.

경기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캐스터

“손님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처럼, 캐스터도 시청자 입맛을 당겨야 해요. 승패에 집착해서 가사 바꿔 부르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스토리를 캐치해야 경기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되고, 기억에 남아요.”

송 캐스터는 지금으로부터 반백년 전인 1970년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꿈 때문이었다. MBC 입사 후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스포츠. 스포츠엔 선수들의, 팬들의, 국민들의 삶과 애환이 모두 담겨 있었다. 송 캐스터는 매일같이 운동장에 나가 중계 멘트를 녹음했다. 연습벌레처럼 노력한 끝에 결국 자리를 꿰찬 그는 장점인 ‘애드리브’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는 송 캐스터의 대표 멘트다. 1997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에서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졌을 때, 그는 단순히 “골~!”을 외치지 않았다. 국민이 공감할 포인트를 정확히 캐치해 경기를 극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조별리그 최종전 말리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패하면 탈락. 0-3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조재진의 헤더 추격골이 터지자 “보신각종 치듯 한 헤딩골”이란 멘트를, 상대 자책골로 추가골이 터지자 “꽁치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는 멘트를 내뱉었다. 우리네 삶 주변에서 늘 있는 일상의 것들로, 송 캐스터는 팬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뚫어줬다.

K리그 중계를 맡은 지난 1년간도 같았다. 송 캐스터는 중계 2시간 전부터 미리 경기장을 찾는다. 경기장 주변에 어떤 산이 있고 어떤 꽃이 만개했는지, 어떤 아파트가 있는지 주민들에게 꼭 묻는다. 지난 안산 그리너스-부천 FC전에서 안산 선수가 슈팅을 허공으로 날리자 “볼이 골대 쪽이 아니라 과천 쪽으로 갔네요” 같은 구수한 멘트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노력 덕이었다. 경기에만 집중하는 젊은 캐스터들과 차별화되는 송 캐스터의 이런 ‘레트로’ 중계 덕에 “할아버지와 축구를 보는 것처럼 정겹다”는 축구팬들의 반응도 많다.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으로, 최불암씨가 ‘한국인의 밥상’으로 하는 것처럼, 저도 나이 들어 축구로써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송 캐스터는 공의 흐름이나 명단을 쫓아가기보단,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윤성호 기자

‘돌아온 장고’, 역경을 극복할까

60년대 영화계에 ‘장고 신드롬’을 일으켰던 총잡이 장고는 87년 ‘장고 2: 돌아온 장고’를 통해 귀환한다. 속세를 잊고 수도승이 됐다가 돌아와, 무법이 판치는 콜롬비아에서 기관단총으로 악당들을 소탕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을 겪는다.

송 캐스터는 자신을 ‘돌아온 장고’ 같다고 했다. 10년여 전 그에게 성공을 안겨준 캐스터를 그만둔 뒤, 그는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자택 주변의 탄천 근처를 매일 5㎞씩 걸으며 가족들과 함께 자연을 벗 삼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축구에 진 빚을 갚으러’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지만, 몰라보게 변한 축구 중계 현장은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 송 캐스터가 즐겨 썼던 ‘센터링’ ‘물수제비 헤딩’ 같은 어휘를 요샌 ‘크로스’ ‘헤더’가 대체했다. 그가 아는 선수들은 이제 대부분 감독이 됐고, 모르는 얼굴들이 경기를 뛴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실수로 가끔 선수 이름을 틀려, 몇 달 전부턴 안경까지 쓴다. 아들보다 더 어린 해설위원들과 호흡을 맞출 때면 ‘날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까’란 걱정도 한다. 심지어 모니터나 마이크가 고장 날 정도로 리그 중계 환경은 국가대표 경기완 달리 열악하기만 했다.

더 큰 역경도 있었다. ‘연고 이전 더비’로 관심을 모았던 26일 부천-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선 제주의 연고 이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K리그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송 캐스터는 “과거 아픈 기억이 있지만 13년이 지났고 부천의 성적도 좋아 앞으로 스포츠맨십 속에서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대승적인 발언이었다”며 “연고 이전이 문제 될 게 없단 말은 아니었는데, 부천 팬들이 섭섭했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돌아온 장고는 결국 모든 악당을 소탕한다. 캐스터 인생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 송 캐스터는 전성기의 영광을 다시 안겨주고 여든 가까운 나이에 마이크를 건네준, ‘고마운’ 축구를 위해 역경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헌신하겠단 각오다. “송 아무개가 중계해 K리그에 호응이 있는 걸 볼 땐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 얼마나 중계를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나이에 무슨 중계냐, 과욕이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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