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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연수 (20) 남편이 쓴 ‘밥퍼’ 폭발적 반응… 인세 3억 모두 기부

책 유명해지며 강의·방송 출연 요청 쇄도

남편 최일도 목사가 쓴 책 ‘밥 짓는 시인 퍼 주는 사랑’ 표지 사진.

1995년 12월 5일 남편이 쓴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밥퍼)’이 나왔을 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목사가 쓴 글이라 얼마나 팔릴지 모른다는 출판사의 걱정은 기우였다. 당시 출판사 쪽 표현을 빌리면 “목사님, 책이 설사 나듯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밥퍼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남편에게는 국내외 강의 요청이 쏟아졌다. 방송사 출연 요청도 줄을 이었다. 나도 함께 출연해달라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 나는 막내 별을 임신하고 있어 정중히 거절했다.

이 무렵 나는 너무 감사한 일이 많았다. 밥퍼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그만큼 사역에 날개를 달았고, 노산임에도 별을 건강하게 낳았다.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전개되는 동안 밥퍼 인세가 3억원을 뚝딱 넘어섰다. 나는 이 돈으로 뭘 할지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선 집을 한 채 사야지. 30평 정도 아파트를 사고 남는 돈으로는 뭘 할까’ 당시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가 1억8000만원 정도였다. 독서지도 하는 곳 대부분이 반포, 압구정 쪽이었던 터라 그곳 학부모들로부터 이사 오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렇게 온갖 꿈에 부풀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그 돈을 곱게 집안일에 쓰게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남편이 인세를 찾아오라고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남편이 되도록 적은 금액을 갖고 오라고 하길 바라며 물었다. “얼마나요?” 남편의 말은 단순했다. “얼마긴, 전부지!” 이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돈을 한꺼번에 주신 건 우릴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어서일 거야. 그러니 목적대로 써야지”라고 말했다.

야속함이 몰려왔다. 몇 푼이라도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디든 다니며 일했던 나였다. 만삭의 몸으로 전철을 세 번씩 갈아타며 학생들 가르치러 이리저리 뛰었는데 어떻게 나와 가족을 위해선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속상했다.

은행에 가면서도 ‘1억원 짜리 수표 2장, 5000만원 짜리 수표 2장을 만들자. 최악의 경우 5000만원이라도 우리 가정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돈을 지키자’는 생각이었다. 마치 큰 전쟁에 나가는 병사와 같은 비장한 마음이었다.

내가 출판사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말했다. “제 아내도 뜻에 동의해서 이렇게 돈을 다 갖고 왔네요. 1억5000만원은 북한에, 나머지 1억5000만원은 다일공동체에 기증하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모든 돈을 내놨다.

북한에 보내기로 한 돈은 특수 결핵진료 차량을 제작해 유진벨재단을 통해 북한에 보내졌다. 그로부터 3년 뒤 그 결핵 이동진료 차량을 통해 10만명 넘는 사람이 검진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동체에 헌금한 돈은 다일영성수련원을 위해 쓰였고, 현재 다일공동체 모원이 되었다.

지금 와서 이때를 떠올리면 부끄러운 마음 가득하다. 가정을 위한답시고, 돈에 대한 애착으로 잔머리를 굴렸던 내 모습에 자책감도 든다. 남편의 선택은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되고 부당해 보여도 세월이 흐르고 보면 늘 옳았다. 그래서 이젠, 이해가 잘 안 될 때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나보다 멀리 내다보는 남편을 더욱 존경한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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